[자료]프랑스-폴란드 동맹조약 1921년 유럽외교사

[제2차세계대전]
[전간기]
[프랑스][폴란드]


프랑스-폴란드 동맹조약
1921년 2월 19일


영문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폴란드 동맹은 1921년부터 1940년까지의 폴란드와 프랑스간의 군사동맹이었다. 전간기 동안 폴란드와의 동맹은 프랑스 대외정책의 초석들 중 하나였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영국 동맹과 함께, 이 동맹은 제2차세계대전의 연합군 탄생의 기초가 되었다.


16세기에 시작된 합스부르크-프랑스 패권경쟁 동안, 프랑스는 오스트리아 동쪽에서 동맹을 찾았고, 즉 폴란드와의 동맹을 희망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폴란드왕 얀3세 소비에스키 Jan III Sobieski 도 오스트리아의 위협에 맞서,, 프랑스와 동맹을 원했지만,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의 위협이 더 컸기 때문에, 빈 전투에서 기독교의 대의를 위해 싸울 수 밖에 없었다. 18세기에 폴란드는 정상적인 국가로 존재하지 못했고,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분할 대상이 되었지만, 프랑스의 나폴레옹1세가 바르샤바 대공국을 통해, 폴란드 국가를 다시 만들었다. 그리고 1871년 독일통일과 함께, 프랑스와 폴란드는 독일이라는 새로운 공동의 적을 가지게 되었다.


전간기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신생 폴란드와 동맹을 체결하는 것은 프랑스의 자연스러운 외교 방향이 되었다. 파리 강화회의 중 프랑스의 클레망소는 "독일에 대한 우리의 가장 확고한 보장은 독일 후방에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가 훌륭한 전략적 위치를 갖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이라 발언했다.


1920년의 폴란드-소련 전쟁 동안, 프랑스는 폴란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지원한 국가였고, 폴란드군을 돕기 위해서 프랑스 군사 사절단 the French Military Mission이 파견되었다.


1921년 2월 19일,폴란드-소련 전쟁의 종결 협상과정에서, 폴란드 외무장관 사피하와 프랑스 외무장관 브리앙이 양국간의 정치 동맹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르면, 양국은 공동의 대외정책,쌍방간의 경제 교류 증진, 조약국 중 하나가 정당한 이유없이 공격받을 경우의 원조 뿐만아니라 중-동부 유럽에 관한 새로운 협약 체결을 위한 논의를 규정했다. 이것은 방어적 동맹이었다. 이틀 후인 1921년 2월 21일, 비밀 군사조약이 체결되었고, 동맹은 독일과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을 대상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폴란드가 공격받을 경우, 프랑스는 통신망을 유지하고, 독일을 견제하지만, 군대를 파견하거나 선전포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이 동맹은 프랑스-체코 동맹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프랑스가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와 동맹을 결성한 것은 독일이 무력으로 베르사유체제의 수정을 도발하는 것을 막고, 독일군이 주변국의 단결된 힘에 직면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상당한 경제와 산업을 보유했고, 폴란드가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삼각 동맹은 완성되지 못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네시 외무장관은 폴란드와의 공식 동맹에 서명하기를 꺼렸고, 이 동맹으로 체코슬로바키아가 폴란드-독일간의 영토분쟁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 믿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향력은 체코슬로바키아 군대의 능력에 대한 동맹국의 의심 때문에 약화되었고, 폴란드의 영향력은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Józef Piłsudski 의 정책에 대한 국내분열 때문에 약화되었고, 프랑스의 영향력은 프랑스가 동맹국의 산업에 투자하기를 꺼렸고, 군사 전문 기술을 공유하기를 기피했기 때문에, 약화되었다.


이 동맹은 방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약이 발동될 경우, 프랑스가 폴란드를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의문이 있었다. 프랑스가 폴란드를 지원하려면, 프랑스 군대가 공격적인 무기체계와 이에 대응하는 군사전략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제1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군은 방어적인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고, 참호전에 대비한 전략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프랑스의 근본적인 관심은, 어떻게 폴란드를 지원하느냐 문제 보다는 폴란드가 어떻게 프랑스에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이렇게, 동맹 관련, 프랑스의 군사전략과 외교전략간의 모순이 존재했다. 뿐만아니라 프랑스가 폴란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가 방어적일 경우에만 협력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 동맹의 한계가 있었다.

1930년대 프랑스-폴란드 동맹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하지만, 나치의 위협이 가시적으로 증가하면서, 양국은 새로운 협약을 추진하게 되었고, 이는 양국의 독립을 보장할 뿐만아니라, 독일과의 전쟁 시 군사 협력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1939년


결국, 새로운 동맹이 1939년에 탄생하기 시작했다. 카스피지스키-가믈랭 협정 The Kasprzycki-Gamelin Convention 이 1939년 5월 19일 파리에서 조인되었다. 이것은 양국 군대간의 협정이었지, 국가간의 협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협정은 양군이 협정 상대국이 나치 독일과 전쟁의 경우에 도움을 제공할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했다. 5월에, 가믈랭은 독일군 공격 3주차에 프랑스가 대담한 구원 공세를 펼 것이라 약속했다. 프랑스가 이것을 조약으로 비준한 것은 독일군이 폴란드를 공격한 지 4일째되는 1939년 9월 4일이었다.


이같은 조약 의무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 동안 폴란드에게 단지 상징적인 도움만을 제공했다. 이것 때문에 폴란드는 이를 서양의 배신 Western betrayal 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