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간기 국제정치에서 소련 입장의 모호함은? 유럽외교사

"스탈린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볼것인가?"

[제2차세계대전]
[베르사유 체제]


소련은 현상유지파인가, 수정주의파인가?


전간기 국제질서에서, 강대국은 두가지로 분류되었다. 우선 현상유지파. 이 국가들은 1919년 파리에서 조인된 조약을 옹호하고, 유지하기를 원했다. 다른 한쪽은 수정주의파였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 현상을 변화시키기 원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자에 속했다고 한다면, 독일,이탈리아,일본은 후자에 속했다. 하지만, 소련은 분류하기 어렵다. 모스크바는 인류해방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혁명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으로 수정주의 국가가 될 운명은 아니었다.


이같은 사실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영국은 수정주의 강대국이 자신의 목표를 평화적으로 추구하겠다고 설득하지 않는 이상, 어떤 수정주의 강대국과도 제휴하기를 꺼려했다. 따라서, 런던에게 모든 수정주의 열강은 잠재적 적국이었다. 한편, 프랑스는 거의 숙명적인 영국의 동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영불관계를 부담스러운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꺼렸다. 수정주의 이탈리아와 독일에 직면한 프랑스는 영국에 운명을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미국도 비슷한 입장이었지만, 워싱턴은 고립주의라는 선택을 했고, 파리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고립주의를 채택할 수 없었다.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다른 모든 국가들을 의혹의 시선으로 바라본, 소련 지도자들은 자신을 프랑스와 같은 현상유지 강대국으로 간주하기도 했고 (프랑스-소련 협정 1935년) 혹은 나치 독일과 같은 수정주의 강대국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독소불가침 조약 19393년). 소련은 수정주의 국가들의 목표가 되기도 했다. (반-코민테른 협정)


이같은 상황 속에서, 보편적인 평화라기 보다는 소련의 안보가 모스크바의 목표였다. 사실, 보편적인 평화란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이한다는 맑스주의 교리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었다.


소련의 입장의 모호함이 영국-소련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영국의 관점에서, 소련은 동맹국이 될 수도 있었고, 적국이 될 수도 있었다. 소련이 수정주의 열강을 견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대가와 비용은 무엇인가? 반대로, 소련은 잠재적인 적국인가? 만약 그렇다면, 수정주의 세력은 영국이 3개의 적국이 아니라, 4개의 적국을 상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목표를 수정할 것인가? 모스크바는 어부지리를 얻기 위해서, 장래에 영국이 개입할 분쟁을 방관할 것인가?


전간기 소련의 외교정책을 보면, 소련은 현상유지와 수정주의 사이에서 갈등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소련은 1938년 뮌헨협정까지는 현상유지파였다가, 1939년 독소불가침조약 체결로 수정주의파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히틀러의 소련 침공으로 스탈린은 다시금 현상유지파로 돌아왔지만, 그 목적은 수정주의를 위한 것이었다. 전후 소련은 동유럽을 자신의 지배권으로 만들면서, 1919년 베르사유 조약 당시의 불리한 지정학적 여건을 극복하게 되었고, 전후 동유럽에서의 패권을 재확립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동안 소련은 현상유지파의 일원으로 싸워서, 수정주의라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기민한 처신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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