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외교정책을 어떻게 볼것인가?" 유럽외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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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외교정책을 해석하는 몇가지 관점들은?"


1. 집단 안보론

The collective security approach


이 해석은 소련 역사가들과 많은 서양 학자들, 가령 테일러 AJP Taylor 와 최근에 제프리 로버츠 Geoffrey Roberts 가 주장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해석에서, 스탈린은 1930년대 후반에 국제적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순수하게 노력한 것으로 주장되며, 히틀러의 위협에 맞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스탈린은 끊임없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유럽에서의 파시즘을 견제하기 위해서 영국 및 프랑스와의 군사 동맹을 추진했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역사가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인용한다 : 스탈린의 국제연맹 가입(1934), 소련이 프랑스 및 체코슬로바키아와 맺은 조약(1935), 스탈린이 파시즘과 싸우기 위한 공산당과 좌파 정당들간의 인민전선론 Popular Front 을 지지한 것(1935), 스탈린이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지지한 것(1936-1939)


역사가들은 이 정책에 대한 스탈린의 믿음이 흔들린 것은 1938년 9월 뮌헨에서 히틀러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유화정책 때문이었다고 해석한다 ; 스탈린은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맹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뮌헨 회담에 초청받지 못했고, 그는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유화적인 것은 히틀러를 자극, 그의 관심을 서유럽으로부터, 소련을 희생시키는 동쪽으로 돌리게 만들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의심했다. 이 관점에서 스탈린은 1939년 독일의 침략에 맞서, 폴란드와 루마니아를 지키기 위한, 프랑스 및 영국과의 동맹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지지하는 역사가들은 1939년 8월의 소련-프랑스-영국 동맹 협상의 결렬과 스탈린의 독소불가침 조약 체결의 책임이 영국과 프랑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소련 붕괴 이후, 소련 문서보관소 기록이 공개되면서, 집단안보설을 지지하는 수많은 증거들이 나왔다.


가령, 제프리 로버츠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독일-소련 친선이라는 라팔로 조약의 전통을 부정하고, 소련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감이 표명되자, 소련 지도부는 서구 열강과의 반-독일 동맹 an anti-German alliance 을 추진할 수 밖에 없었다. 1933년 12월부터 1939년 8월까지 모스크바를 집단안보를 통한 평화를 적극적이고 일관되게 추진했다. 하지만 뮌헨협정 때문에, 스탈린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결론내렸고, 소련은 서양 민주주의와의 전면적인 군사동맹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1939년 8월 중순, 소련-프랑스-영국간의 동맹 협상이 결렬되고, 히틀러가 매력적인 제안을 해오자, 스탈린은 기존 정책을 전면 수정,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2. 스탈린을 냉소적이고 잔인한 약탈자로 간주하는 관점


몇몇 역사가들, 특히 냉전시기 동안 미국의 역사가들, 가령 윌리엄 랭어 William Langer와 에버트 글리슨 S Everett Gleason은 스탈린에게 1939년 세계대전 발발의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930년대 스탈린의 집단안보 추구는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들간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한 사기적인 계획이었고, 그는 소련을 동유럽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야심만만한 계획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서는 특히 독소불가침 조약을 강조하고, 스탈린은 독일을 프랑스 및 영국과의 전쟁으로 몰아넣기를 원했고, 이같은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세나라가 약해지기를 원했고, 소련은 전쟁에서 벗어나 더 강력해 지기를 원했다. 스탈린의 팽창주의적 야심의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 1939년 9월의 소련의 폴란드 동부 점령, 1939-1940년 발트해 국가들 점령, 1939-1940년 핀란드와의 겨울전쟁. 소련은 핀란드 침공으로 국제연맹에서 제명되었다.


프랭크 맥도나 Frank McDonough 는 <제1,2차 세계대전의 기원>에서, 소련 붕괴 이후 소련 문서보관소에서 공개된 기록에 따르면, 스탈린을 제2차세계대전을 도발한 주요 공격자로 그리는 것을 지지하는 증거들은 전혀 없다고 한다. 실제로, 소련 문서들은 스탈린의 집단안보 추구가 진실했다고 증언한다는 것이다.


3. 독일학파

The ‘German school’


로베르트 투커 Robert Tucker 같은 독일학파 역사가는 1930년대 스탈린 대외정책의 일관된 목표는 독일과의 동맹 추진이었다고 주장한다. 독일학파는 1930년대 소련 대외정책의 우여곡절 배경에는 1920년대식의 소련과 독일의 친선을 부활시키려는 욕망이 있다는 것이다. (1922년 라팔로 조약 the Rapallo Pact of 1922, 1926년의 베를린 조약 the Treaty of Berlin of 1926) 이 관점에 따르면, 스탈린은 1939년에 프랑스 및 영국과의 협상에 실제로 관심이 없었고, 1939년 8월의 히틀러와 조약을 원했고, 이는 그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보상이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스탈린은 히틀러와의 동맹을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1941년 6월의 히틀러의 소련 침공 때문에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4. 소련 국내요인론

The influence of internal party politics


조나단 해슬롬 Jonathan Haslam  같은 역사가들은 소련의 대외정책 형성에서 국내의 정치적인 요인이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몇몇 역사가들은 스탈린은 대외정책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고, 국내 정책과 특히 경제 재건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소련의 대외정책은 국내의 권력 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한쪽에는 막심 리티노프(소련 외무장관 1930-1939)가 이끄는 영국과 프랑스와 친선을 중시하는 파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독일과의 타협을 선호하는 몰로토프(소련 외무장관 1939년 이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소련 대외정책의 모순적인 급변, 즉 1939년 8월까지 영국과 프랑스를 동맹대상으로 하다가, 1939년 8월말 공산주의의 적인 독일과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한 것은 소련 지도부내의 권력 투쟁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소련 기관들 간의 권력 투쟁도 있었다는 것이다. 외무부와 코민테른. 양자는 소련의 대외정책 형성에서 주된 역할을 담당했지만, 서로 대립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외무부가 소련의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한, 더 실용적이고, 덜 이데올로기적인 정책을 추진했다면, (가령 1935년의 프랑스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동맹 협상), 코민테른은 프랑스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를 타도하기 위한 세계혁명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민테른은 1935년까지는 유럽에서 사민주의 타도를 강조했지만, 1935년 이후는 파시즘 타도를 위한 인민전선론을 강조했다.    




덧글

  • 야매사진사 2012/09/16 19:41 # 답글

    제가 좀 탐독하게 다른곳에다가 링크만 걸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 파리13구 2012/09/16 20:11 #

    감사합니다. ^^
  • 일화 2012/09/17 00:49 # 답글

    3. 4.는 그렇다치고, 1. 2.가 모순된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네요. 마키아벨리가 지적했듯이 원래 사람이나 국가나 여유가 없으면 자위를 생각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침략을 생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소련이라는 나라가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록을 문서보관소에 남겨둘 나라인지도 다소 의문이고 말이죠.
  • 파리13구 2012/09/17 10:12 #

    네, 소련측 기록에 대해서는 가혹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라라 2012/10/07 11:57 # 답글

    코민테른은 프랑스와 같은 민주주의 국가를 타도하기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아닌지요?
  • 파리13구 2012/10/07 12:26 #

    부르주아 민주주의 국가, 곧 자본주의 국가 타도를 목표로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가을 2012/10/23 08:17 # 삭제 답글

    스탈린 떄문에 우리나라 분단국가 된거자나여ㅠㅠ
    저넘이 우리나라하구 북한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ㅠㅠ
    그것만 아니었다며 지금쯤
    우리나라 경제대국으로서
    떳떳하게 하나의 거대한 나라로서 살구 있을텐데ㅠㅠ
    무엇보다 다른나라끼리 싸움을 경쟁시킨 장본인이라서
    진짜 증오함
    저넘이 만약에 없었다면
    분단국가두 안됬구
    러시아가 다른나라 침략해서
    독립국가 수많이 생기게 하지두 않았을듯
    모든 공산주의의 원인제공자가 바루 저넘 스탈린임
    인류역사상 가장 실패한 인물이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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