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뮌헨협정]
뮌헨협정 이후의 베네시의 행적은?
1938년 9월의 뮌헨협정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네시 대통령 만큼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자신이 창건의 주역이었던 민주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선고 였기 때문이다. 협정 직후, 베네시는 동맹국들이 겁쟁이들이라 비난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 때문에, 프랑스와 영국이 나치 편에 가담한 것이었다. 뮌헨 협정에 서명한 4대 강국들 중에서 두나라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배심감은 더욱 컸다.
뮌헨협정 직후, 대통령에서 사임한 베네시에게 사악한 뮌헨협정의 거부와 체코슬로바키아 민주 공화국의 재건은 그의 목표가 되었다. 그는 세계가 점점 전쟁을 향해 나아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전면전만이 뮌헨협정의 공포를 무위로 돌릴수 있었다. "유럽에서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야 하고, 뮌헨 협정의 모든 책임 당사자들이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네시는 1939년 8월의 독소불가침 조약이 도덕적으로 문제있다고 보았지만, 이것 덕분에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는 1933년부터 1939년간의 히틀러주의의 성장은 유럽 탓이라 믿었다. 전쟁만이 유럽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심지어 1939년 9월의 독일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도 당시 망명중이던 베네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는 반-히틀러 동맹은 소련이 포함되어야만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1941년 6월에 그 완성을 목격하게 된다. 소련에 대한 히틀러의 공격이 그에게 큰 만족을 주었다. 마침내, 베네시가 1938년에 정말로 원했던 동맹이 탄생한 것이었다. 이 동맹에는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포함되는 것이었고, 베네시는 뮌헨 협정의 시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베네시 대통령이 1938년 9월 30일에 싸우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그가 동맹국 프랑스와 소련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그는 영국의 압력을 받았고, 다른 국가들도 주데텐란트가 히틀러의 마지막 요구라는 점에 대해 동의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주권을 포기하면서, 베네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유럽의 평화를 위해 공헌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뮌헨협정이 자신의 조국의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히틀러와 민주주의간의 거대한 전쟁의 시작이 될 것이라 희망했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가 부활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제3제국이 그가 일정부분 역할을 하게 될, 대동맹에게 패배할 것이라 전망했다.
베네시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뮌헨 협정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도 했지만, 그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뮌헨협정 이후, 베네시는 패배로 인한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 곧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자신에게 상처를 안긴, 체임벌린,핼리팩스, 랜씨맨의 은거지인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에서 베네시는 뮌헨의 악몽으로부터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행동에 전념했다. 뮌헨협정 이후에도 히틀러의 위협이 계속되면서, 체임벌린,달라디에,핼리팩스가 정치적으로 몰락하는 가운데, 베네시는 부활했다. 그리고 1945년 봄, 베네시는 프라하로 금위환양했고, 대통령으로 정치 인생을 재개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동유럽에서 행복한 결말은 드물었다. 물론 베네시는 전술적으로 성공했고, 뮌헨협정을 무효로 만들었고, 체코슬로바키아를 부활시키는데 성공했고, 주데텐란트 독일인에 대한 강제추방 결정을 통해 주데텐란트 문제에 대한 최종해결을 추진했지만, 결국 1948년 체코 공산당 쿠데타로 물러나게 되었다. 스탈린이 전술적으로 패배했지만 전략적으로 승리했다면, 베네시의 전술적인 성공은 전략의 패배로 그 빛을 잃었다.













덧글
뿐만아니라, 붉은 군대 통과를 위한 폴란드와 루마니아와의 협상도 지지부진 했습니다.
베네시가 굴복한 것은 소련의 배신이 결정적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