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뮌헨 협정]
[소련 외교][스탈린]
"소련은 뮌헨협정을 어떻게 보았을까?"
1938년 9월 30일의 뮌헨 협정은 분명히 소련에게 최악의 사태 전개였다. 이것은 소련에 대한 위협이자, 소련의 고립을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몇가지 증거들에 따르면, 소련 지도부는 뮌헨협정 이후의 유럽 정세를 고립의 위협이면서 동시에 기회로 보았다. 1939년 프라하의 미국 영사관이 확보한 문서에는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한 이후에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주의자 단체가 모스크바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히틀러는 1939년 3월 13-14일에 나머지 체코슬로바키아를 쓸어벼렸다.
모스크바를 방문한 체코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과 히틀러간의 놀라운 우정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자신의 동지들은 소련에 대한 충성 때문에 나치 게슈타포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있는데, 스탈린이 나치 독일과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항의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대표단은 독소불가침조약 체결의 장본인인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과 면담했고, 장관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만약 소련이 서양 강대국들과 조약을 체결하면, 독일은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세계혁명을 위한 호기를 제공해 줄, 전쟁을 도발할 수 없게 된다. 포위된 독일은 전쟁을 시작할 수 없다... 현재의 전쟁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오래 지속되어야 한다. 진정해라. 왜냐하면, 현재보다 우리의 이해에 더 유리한 적은 결코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련 외교는 뮌헨 협정에서 배제되면서 순간적으로 패배한 것이 분명했지만, 단숨에 회복했다. 스탈린은 소련의 고립을 정면돌파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행동을 할 필요를 느꼈다. 소련은 즉시, 폴란드에 대한 히틀러의 전쟁이 가능한 외교 조건을 만들었고, 독일과 서양의 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다. 폴란드에서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치명적인 공격을 우선적으로 감당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1939년 8월말, 독일,영국,프랑스는 히틀러가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기다릴 수 있었고, 심사숙고 할 수 있었다. 1938년 뮌헨회담에서 배제되면서, 스탈린은 그로부터 1년후에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유럽 지도자가 되었다.
퍙생동안 스탈린은 많은 전술적인 실책들을 범했고, 뮌헨도 그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인상적인 전략적 승리를 통해, 전술적 실책을 만회할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 주데텐란트 위기에 대한 뮌헨식 해법은 무용지물이었고, 이를 합의한 4대 강국도 부활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영향력을 재행사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단지 소련의 스탈린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체코슬로바키아는 그의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뮌헨협정의 유산을 통해 가장 이익을 본 것은 바로 스탈린이었다.
출처- Czechoslovakia between Stalin and Hitler:The Diplomacy of Edvard Benes in the 1930s. Contributors: Igor Lukes - Author. Publisher: Oxford University Press. Place of publication: New York. Publication year: 1996.













덧글
히틀러,무솔리니,체임벌린,달라디에는 모두 정치생명 혹은 사망한 상황에서
전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주데텐 문제를 다시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베네시 대통령과 스탈린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네시는 공산당 쿠데타로 실각하게 되니,
뮌헨의 최종 승리자는 바로 스탈린이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2. 사실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의 소멸로 가장 위험해진 나라를 꼽는다면 바로 폴란드죠. 두 나라를 합병하면서 독일의 전쟁준비가 그만큼 더 충실해졌을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도 폴란드가 상당히 불리해지게 되었습니다.(물론 당시 폴란드 지도자들은 이런건 생각 안했는지 체코슬로바키아 최종 분할때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