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나치와의 전쟁을 원했던 이유는?" 유럽외교사

[체코]베네시-히틀러와 스탈린의 틈바구니에서


[제2차세계대전]
[소련외교][스탈린]
[주데텐란트 위기][뮌헨협정]

"나치와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기회다!"


주데텐란트 독일인 문제와 관련, 체코슬로바키아 위기가 한창이던 1938년 8월말, 스탈린의 최측근, 안드레이 주다노프 Andrei Zhdanov 가 프라하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베네시 대통령은 알지 못할 정도로 음모적이었고, 관련 사실은 이후 50년 동안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문서보관서에서 비밀로 분류되어 잠자고 있었다. 스탈린의 밀사가 방문한 것은 바로 베네시 대통령이 영국의 런씨맨 중재단의 외교 압력에 굴복, 주데텐 독일인에 대한 굴욕적인 양보를 한 직후였다. 주다노프의 주요 방문 목표는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와 관련, 코민테른의 최신 전략을 토론하기 위한 것이었다.


3시간 동안 강연을 통해, 주다노프는 비록 파시즘이 위협이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만약 체코슬로바키아와 독일간의 전쟁이 발발하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는 많은 기회가 열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우선, 파시스트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것은 모든 공산당원의 의무다. 동시에, 공산주의자는 전쟁으로 인해 초래될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대중 동원의 호기로 이용해야 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의 자본주의 종말을 가속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히틀러, 자본주의와의 투쟁 과정에서, 결국 체코 공산당은 붉은 군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결론적으로, 주다노프는 제2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물결론 "the second wave of proletarian revolutions"을 주창했다. 즉 제1차세계대전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제1의 물결이었다면, 다가오는 유럽의 전쟁은 혁명의 제2의 물결을 위한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현재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정치 상황은 체코 공산주의자들이 제2의 혁명의 물결의 도래를 촉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다노프는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히틀러의 공격은 파시스트 지배의 종말의 시작일 뿐만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의 부르주아 착취 제도의 종말의 시작이다." 체코슬로바키아 인민들은 우선 붉은 군대와 함께, 제3제국과 싸우게 될 것이다고,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의 주도하에, 체코인민들은 부르주아지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즉 나치와의 전쟁 이후의 유럽에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물결이 요동칠 가능성을 진지하게 전망한 것이었다.


1930년대말 소련의 혁명적 전략은 중요했다. 독일의 막강한 힘을 의식해서 전쟁을 기피했던 영국과 프랑스와는 달리, 크레믈린은 히틀러에 대한 유화가 가능하다는 환상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탈린에게 전쟁은 목표였고, 양보 뿐만아니라 협상도 폭발을 연기시킬 뿐이었다. 소련 지도자들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계산했고, 전쟁이 파국이 아니었다. 전쟁을 통해, 각국의 민족주의,애국심이 국경을 초월하는 계급의식으로 대체될 것이라 기대했다. 히틀러에 대한 전면전 이후, 유럽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대격변의 무대가 될 것이고, 이것을 주도하는 것은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스크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체코 베네시 대통령의 상황판단도 이에 부합되는 것이었다. 1938년 3월 30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는 손님들에게, 영국 및 프랑스와는 달리, 소련은 제3제국과의 전쟁을 원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베네시에 따르면, 전쟁 이후, 유럽에서의 공산주의의 침투가 다양하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소련의 모든 예상이 적중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크레믈린은 서유럽에서의 나치 독일의 전격전에 전율과 공포를 느꼈다. 그렇다. 스탈린은 히틀러가 영국과 프랑스와 싸우게 되기를 기대했지만, 독일이 그렇게 빠르고 빛나는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8년 여름, 당시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것은 바로 크레믈린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영국은 체코의 베네시 대통령에 대한 외교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었고, 랜씨맨 중재단이라는 꼴사나운 압력을 행사, 민주주의 체코가 파시즘 독일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자신의 장엄한,명백한,신성한 의무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거듭 다짐했지만, 프랑스는 새벽닭이 울기전에 체코슬로바키아를 3번 이상? 결정적으로 부인,배신할 것이었다.  결국 모스크바가 예상한 것처럼, 1년안에 양국은 그들이 피하기를 원했던 바로 그 전쟁에 말려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와 1938년 프라하에서 주다노프가 공언했던 사회주의 혁명의 제2물결은 언제 도래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모스크바가 예상한 식으로는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제2차세계대전이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국가들로 분열된 유럽 사회를 계급 전쟁으로 몰아가지 못했고, 각 국가들은 두개의 진영으로 나뉘어 싸웠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의 제2의 물결은 실제로 1944년에 붉은 군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순간, 붉은 군대는 동부, 중부 유럽에 진입했다. 물론, 붉은 군대와 비밀 경찰을 통한 공산주의 강요는 우아하지 못했다. 만약 동유럽에서의 소비에트 체제가 전쟁이 초래한 상처와 혼란을 통해 발전했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이같은 내재적인 발전은 동유럽 소비에트 체제를 더 정통적이고, 더 안정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붉은 군대를 통해 공산주의를 강요하는 방법은 지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공산주의자들이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붉은 군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에 실제로, 제2물결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동부,중부 유럽을 강타한 것이 사실이다. 단지 스탈린이 장악한 동유럽에서만 말이다. 1948년 2월의 프라하에서의 공산주의 쿠데타가 10년전 바로 이 도시에서의 주다노프의 예언이 실현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나치에 대한 유럽의 전쟁이 초래한 폐허 위에서, 스탈린은 자신의 동유럽 제국이라는 씨앗을 뿌렸던 것이었다.

출처- Czechoslovakia between Stalin and Hitler:The Diplomacy of Edvard Benes in the 1930s. Contributors: Igor Lukes - Author. Publisher: Oxford University Press. Place of publication: New York. Publication year: 1996.    


덧글

  • 셔먼 2012/09/12 18:40 # 답글

    결국 체코는 외부에 의한 압력으로나마 공산주의의 제 2 물결이 실현되었군요.
  • 파리13구 2012/09/13 07:10 #

    네, 붉은 군대의 힘을 바탕으로한 사회주의 혁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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