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세계대전]
[주데텐란트 위기][뮌헨협정]
체코위기 해결을 위한 영국의 런씨맨 중재단의 활동
월터 런씨맨 Walter Runciman은 영국 자유당 정치인으로, 1938년 8월 3일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와 주데텐란트 독일인간의 위기를 평화적으로 중재하기 위해 프라하로 파견되었다.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의 요청에따라 체코슬로바키아에 간 런씨맨은 갈등을 중재하기 보다는 프라하 정부가 더 많은 양보를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다. 중재단 활동 초기, 런씨맨은 주데텐란트가 체코슬로바키아 내부에서 일종의 자치권을 획득하는 것이 논리적인 해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수의 주데텐란트 독일인들이 독일 제3제국으로의 합병을 원한다고 생각한 그는, 최종 보고서에서 자치가 아닌 합병을 지지하게 되었고, 이것이 뮌헨협정으로 귀결되었다.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네시 대통령은 영국 중재단 방문 이전부터, 주데텐 독일당의 콘라트 헨라인이 1938년 4월에 요구한 8개조 요구안 중에서, 주데텐란트의 자치권과 주데텐란트 의회만을 제외하고는 수용할 의사가 있었다. 하지만 런씨맨 중재단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베네시에 대한 영국의 외교압박이 심해지면서, 결국 8개조 요구안을 모두 수용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중재활동을 통해, 런씨맨은 주데텐 독일인들의 입장에 더욱 공감하게 되었다. 그는 프라하 정부가 주데텐 독일인들의 불만을 시정할 준비와 자세가 되어있지 못하다고 보았고, 주데텐 독일당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는 가운데,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네시 대통령을 동유럽 평화의 최대 걸림돌로 간주했다.
런씨맨 경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체코의 관리와 체코 경찰은 독일어를 약간만 할 수 있거나 전혀 못하고, 순수한 독일인 거주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체코의 농업 이주자들이 독일주민에 대한 토지개혁 동안 몰수한 땅에 정착하도록 장려되고 있다. 이 체코 침략자들의 아이들을 위해서, 체코 학교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매우 일반적인 믿음에 따르면, 체코 회사는 국가 계약 수주 과정에서 독일 회사보다 특혜를 받고 있으며, 국가는 독일인 보다는 체코인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와 구제를 제공한다.
나는 이같은 주데텐 독일인들의 불만이 대체로 정당하다고 믿는다. 심지어 나의 중재 활동 막바지 까지도, 나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측의 적정한 수준의 어떠한 전향적인 자세도 발견하지 못했다.
대략 3-4년 전까지만 해도 주데텐 독일인들은 절망의 나락에 있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이 성장과 함께, 그들은 새로운 희망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동족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고, 독일제3제국으로의 궁극적인 편입을 주장하는 것이 상황의 자연스러운 발전이라 간주한다."
이렇게 영국측 외교의 압력 덕분에, 히틀러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고, 주데란란트와 관련해서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가능한 모든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체코슬로바키아 베네시 대통령은 뮌헨협정에서 유럽의 4대 강대국의 합동 외교 압력을 당하기 이전에, 외교적 무장해제 상태 였던 것이다.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