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연방을 제안한 이유는?" 유럽외교사

[체코]베네시-히틀러와 스탈린의 틈바구니에서

[제2차세계대전]
[외교사]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연방

Polish-Czechoslovak confederation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제2차세계대전 시절의 정치 개념이었고, 폴란드 망명정부가 추진했고, 다소간은 영국과 미국이 지지했던 방안이었다. 이것은 폴란드의 피우수트스키의 동유럽연방 구상의 부활이었고,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연방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로부터 미지근한 지지만을 받았고,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는 소련과 적대하기 위해서 폴란드의 지원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믿었고, 전쟁이 경과하면서 소련의 힘이 거세지자 결국 좌초되었다. 스탈린은 자신의 동유럽 영토분할 구상을 위협할지도 모르는 동유럽에서의 강력하고,독립적인 연방 탄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배경>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완패한 후, 폴란드와 체코슬바키아는 서양에서 망명정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독일이라는 공동의 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았고, 이는 양구간의 영토분쟁 역사 때문이었다. 폴란드 정부는 피루스트스키 시절의 동유럽 연방 구상을 다시 꺼내들어,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동유럽 연방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호자파 Milan Hodža 와 베네시파 Edvard Beneš 로 양분되었고, 제안을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지지했다. 


<협상>


체코 정치인들 중에 호자는 연방안을 조용히 지지했지만, 베네시는 더 미온적이었다. 베네시의 목표는 뮌헨협정 이후 폴란드에게 넘어간, 양국간의 분쟁지역인 조알지 Zaolzie 를 되찾는 것이었고, 이것이 협상 진전의 주요 걸림돌이었다. 베네시는 잃어버린 영토 회복을 일차적 목표로 삼았고, 소련을 잠재적인 동맹으로 삼았고, 폴란드에 대한 균형추로 간주했고, 폴란드 보다는 소련에 더 가까워지도록 노력했고, 소련이라는 강대국과의 동맹이 여러 약소들과의 동맹보다 체코슬로바키아에게 더 유리하다고 계산했다. 이는 폴란드의 시각과는 정반대였고, 당시 폴란드 망명정부 지도자 시코르스키 Władysław Sikorski는 소련 전후 유럽질서의 주된 위협으로 간주했다.


1939년, 시코르스티가 베네시에게 접근, 장래의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연방에 관한 토론을 제안했을때, 그의 목표는 강력한 전후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를 건설하는 것이었지만, 베네시의 대답은 기껏해야 미온적이었고, 이는 베네시가 강력한 폴란드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베네시의 주된 관심은 체코의 1938년 이전 국경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시가 시코르스키의 제안을 노골적으로 거부하지 않은 것은 연방 제안을 영국과 미국이 지지했고, 그의 반대로 폴란드가 망명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야당과 협상할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 때문에 그의 정부가 영국 외무부로부터 배제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베네시는 연방 가능성에 대해서 폴란드와의 협상을 계속하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사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협상 목표는 아무런 실질적인 약속을 해주지 않고 협상을 질질 끄는 것이었다.


수많은 회담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느리게 진전되었고, 1940년 11월 11일과 1942년 1월 23일의 합동 성명으로 양국 정부는 전후 연방을 구성하는데 동의했고, 외교,국방,무역,교역,통신 분야에서의 공동 정책 수립을 공언했고, 1941년 1월에는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 조정위원회 the Czechoslovak-Polish Coordinating Committee 의 신설을 공표했고, 이 위원회를 통해 협상을 진전할 계획이었다.


1941년 이후의 폴란드의 제안은 완전한 경제적 통합을 포함한, 외교,경제 정책의 조정이었다. 베네시는 잠재적 연방이 단순히 독일에 대한 상호 방위를 위한 것이 되도록 노력했고, 소련은 위협이 아니라 잠재적인 동맹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체코의 입장이 친소련적이었고, 베네시 정부는 양국간의 주요 협상 비밀 내용을 소련에 넘겼고, 체코 망명정부가 체코슬로바키아-소련 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소련의 입장에서, 폴란드가 주도하는 동유럽에서의 강력한 연방 탄생은 소련의 세력권 만들기에 방해물이 되는 것이었다. 소련은 동맹 약속과 영토 보장을 통해, 체코 정부에게 압력을 행사했다. 1942년말, 1943년초, 일련의 군사적 승리로 소련의 입장이 강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와 소련간의 관계가 더 강화되었다. 1942년 11월,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승인을 얻기 전까지, 폴란드와의 협상을 중단시키기로 결정했고, 1943년 2월 10일, 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 리프카 Hubert Ripka 가 폴란드 정부에게 소련에게 적대적인 어떤 협상도 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했고, 이것이 협상에 치명타가 되었다.


<영향>


폴란드군 장교의 카틴숲 학살 사건 관련 논쟁으로, 폴란드 망명정부와 소련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이후, 베네시는 체코슬로바키아-소련 동맹 추진에 매진했다. 시코르스키의 사망과 함께, 양국간의 연방구상은 또한번의 치명타를 맞았다. 1943년 12월,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와 소련간의 새로운 동맹이 결성되었고, 1944년 봄에, 양국간의 군사협력 조약이 체결되었다.

소련에 대한 베네시의 지지는 1943년의 그의 미국 방문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위협이 절대로 될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시코르스키가 제안한 폴란드측의 연방 제안이 무산되었다. 무산으로 인한 승자는 단기적으로 보면 베네시였고, 장기적으로 보면 소련이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폴란드와의 분쟁지역인 조알지를 되찾게 되었지만, 1948년경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양국이 단지 명목상의 독립국이 되었고,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양국 모두의 소련이 지배하는 동구권 국가들이 되었다.

베네시는 공산당 쿠데타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후, 1948년에 사망했다.  


덧글

  • 셔먼 2012/09/03 18:52 # 답글

    아무래도 폴란드로써는 소련에 대항할 자신들만의 세력권을 늘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전간기에도 소련에 맞서 재차 영토를 확장한 것을 보면 말이죠.
  • 파리13구 2012/09/04 01:37 #

    네, 전후 독립 직후 폴란드는 스스로 중유럽의 강대국이 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독소불가침조약에 의한 폴란드 분할이었습니다.
  • 행인1 2012/09/03 22:42 # 답글

    사실 궁극적으로는 소련의 승리 때문에 그냥 망명정부끼리의 협상으로 끝나버렸지만 소련이 아니더라도 이 협상이 좌초할 거리는 얼마든지...;;;
  • 파리13구 2012/09/04 01:37 #

    네, 소련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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