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작전] 북아프리카의 주축국에 대한 협공 레지스탕스

[제2차세계대전]횃불작전 70주년

<지도를 보면 모로코,알제리,튀니지는 비시 프랑스가, 리비아에는 주축국이, 이집트에는 영국이 있었지만,
1942년 11월의 횃불작전으로 리비아의 주축국은 동쪽과 서쪽에서 영미연합군에게 협공을 당하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북아프리카전투]


주요 연표


1940년 6월, 독일이 프랑스를 격파하고, 영국을 섬으로 고립시키면서, 유럽 대륙에서의 팍스 게르마니카를 위한 기반을 건설하는데 성공하자, 이탈리아는 이를 지중해에서의 팍스 이탈리아나 건설을 위한 호기로 간주했다.


1940년 6월 10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프랑스와 영국에게 선전포고


6월 28일 무솔리니는 "이탈리아가 갈망하는 전리품" 이집트를 향해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당시 이집트 주둔 영국군은 3만6000이었지만, 리비아 주둔 이탈리아는 25만명이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서, 이집트 진격이 지체되었다.


9월 13일, 마침내 이탈리아군이 수에즈 운하 장악을 위한 이집트 침공에 나섰다.


12월 영국이 이집트를 탈환했다. 그리고 1941년 1월에 영국이 리비아 토부룩과 2월에 벵가지를 점령했다.


1941년


2월 12일 롬멜이 이탈리아를 구하기 위해 리비아로 파병된 독일군 사령관에 취임했다. 롬멜의 아프리카군단이 이집트에서 첫 성공을 거두다.


1942년


5월 26일-6월 11일 -롬멜이 지휘하는 독일-이탈리아 군대의 공격을 코니그 장군이 지휘하는 자유프랑스군 제1여단이 16일 동안 막아냈다. 덕분에 영국군은 엘알라메인에서 정비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6월 21일 - 독일군이 토부룩을 공격했다. 영국은 7월 3일에 항복했다.


6월 28일 - 이탈리아와 독일군이 이집트 국경을 돌파했다.


8월 19일 - 연합군이 프랑스 디에프 상륙작전을 감행했지만, 실패하고, 2000명의 병력을 잃었다.


10월 23일- 연합군이 공세에 나섰다.


11월 4일- 몽고메리의 영국군 8군단이 엘-알라메인 점령을 위해 도착하다.


11월 8일- 영미 연합군의 알제리,모로코 상륙작전, 즉 횃불작전이 개시되었다. 바로 그 날 알제에서는 정전이 선포되었지만, 오란과 모로코에서는 11일에 가서야 선포되었다. 튀니지에서의 전투는 몇 일뒤에 시작되었지만, 영국은 11월 25일에 튀니스를 장악하는데 실패했다.


11월 22일- 알제에서의 미국 클라크와 비시의 다를랑간의 합의에서 자유 프랑스 세력이 배제되었다. 프랑스 제국의 통일성이 인정되었고, 프랑스군이 영미군의 동맹군이 되었다.


12월 24일- 다를랑 제독이 페르낭 보니에에게 암살당했다.


1943년


1월 23일- 동쪽에서 진격해온,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이 트리폴리를 공격했다. 그는 1월 25일에 리비아 남부의 페잔 장악을 마친, 자유프랑스의 르클레크 대령과 합류했다.


1월 14일-24일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루스벨트와 처칠이 튀니지 전투를 끝내고 난후, 시칠리아 상륙작전과 이탈리아 공격을 결정했다. 이 회담에서 드골과 지로가 프랑스를 대표했다.


2월 16일- 몽고메리가 튀니지로 진입했지만, 독일이 2월 19일 카세린 언덕에서 반격했다.


3월 - 독일의 저항이 소진되고, 롬멜이 폰 아르님으로 교체되었다. 자유프랑스의 르클레크가 영국군과 함께 3월 29일에 가베스 Gabes 에 진입했다.   


5월 7일- 영국 제1군단이 튀니스에 진입했고, 미군이 비제르테 Bizerte 를 해방시켰다. 주축국 군대가 5월 13일에 항복했다. 이제 북아프리카가 연합군 수중으로 넘어왔다.


<연합군의 협공>

이탈리아가 1942년 6월 북아프리카에서의 공세를 시작했고, 리비아로부터 이집트를 공격했다.


여름까지, 영국의 몽고메리와 독일의 롬멜간의 이집트에서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1942년 11월 2일의 엘알라메인 전투가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 승리는 결국 연합군의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8일 영미연합군의 횃불작전이 시작되었고, 독일에게는 서쪽에서의 새로운 전선이 형성되었다. 위험을 인식한 롬멜은 동쪽 영국군이 진격해오기 전에, 먼저 미군을 상대하기 위해서 튀니지로 철수했고, 이는 두 개의 전선에서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롬멜은 마레쓰 Mareth 방어선을 강화했고, 이는 몽고메리 전차를 저지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또한 시칠리아,이탈리아로부터의 공군지원을 받았고, 이 덕분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몇 달동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봄이 오자, 영미 연합군의 협공이 강화되고, 결국 주축군 군대는 1943년 5월 13일에 항복했고, 연합군에게 남유럽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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