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에 상륙해야만 했을까?" (2) 레지스탕스

"북아프리카에 상륙해야만 했을까?" (1)

<미군의 경험부족>


미군의 가치에 대한 의심이 고조되었고, 물질적인 어려움도 가중되었다. 회고해보자면 1939년에 맹아 상태에 있던 미군은 세계 군사력 17위로 분류되었고, 루마니아 다음이었다. 방금 징병된 훈련병들에게 교육이 부족했고, 매우 어린 훈련병들이 너무 많이 마셔서, 노포크의 술집 문앞에는 "개와 해군은 출입금지!"라고 써붙일 정도였다. 체사피크 만과 스코틀랜드에서 반복 훈련을 실시했지만, 훈련은 여전히 부족했고, 아이젠하워가 인정한 것처럼, 당시 미군의 특징은 "명백한 미숙함"이었다.


미군의 전의를 올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였다. 1942년 10월 23일 패튼 장군이 모로코 공격을 책임질 150명의 장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용감한 연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직 진격뿐이다. 제군들이 대포 소리를 들으면, 일반적으로 전선이 어디인지 알게된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제군들이 전투과정에서 손 혹은 귀를 잃거나, 코의 일부를 잃거나, 잘게 찢기게 될 수도 있다. 이 상황에서 제군들은 응급처치를 위한 후송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제군들을 보면, 이것이 바로 제군들의 마지막 지랄같은 산책이 될 것이다. 장교로서, 제군들은 오직 전진만 할 수 있다!"


보급품의 적재도 골칫거리였다. 확실하게 표면상으로 모든 것을 예상했다. 미국 함대는 350만 리터의 석유와 10만 달러 상당의 금괴, 67000개의 완장과 이를 고정시키기 위한 핀 138000개를 가지고왔다. 하지만 미군의 상륙은 함정 순서가 아니라 알파벳 순서로 이루어졌고, 이것이 혼란으로 이어졌다. 영국이 더 운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부두에 쌓아둔 보급품의 20%를 도난당했다.


상륙작전에 대해서 비시 군대가 어떻게 대응할지도 미지수였다. 확실히, 미국은 프랑스쪽 공모자와 사전 접촉해서 그들의 협조를 약속받았다. 미국은 지로 장군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었다. 루스벨트는 영국군을 공격 제1선에서 배제시키면서, 비시주의자들의 반영 反英 심리를 배려하는 원초적인 속임수를 개인적으로 당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같은 약속이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이같은 불확실성이 작전기획자들을 복잡한 수렁에 빠트렸다. 만약 프랑스가 침공에 강하게 저항한다면, 제1차 상륙부대의 보병 비율을 높여야 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군 보급부는 지원 부대의 비율을 늘려, 수송선을 트럭과 석유로 채울 수 있었을 것이고, 이는 튀니지에 대한 빠른 진격을 위해 매우 소중한 이점을 제공해줄 것이었다. 결국 신중한 원칙이 적용되면서, 전략가들은 전자를 채택했다. 이후의 사건을 보면 그들의 신중함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덧글

  • 토나이투 2012/08/29 11:13 # 답글

    좋은글 잘읽고갑니다
  • 파리13구 2012/08/29 11:23 #

    감사합니다.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8/29 12:25 # 답글

    호오 금괴는 왜 가져간거죠?
  • 파리13구 2012/08/29 12:27 #

    군자금이지 않았을까요?
  • 멀티런 2012/08/30 13:39 # 삭제

    군자금이죠...당시엔 기축통화란게 없으니 금으로 모든걸 구입했읍니다...러일전쟁당시 러시아 해군함정에 실려있던 군자금용 금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사기투자 모집도 많았읍니다.
  • 아무것도없어서죄송 2012/08/31 09:14 #

    흐음.....20세기 중반에 말입니까?
    현대 군대들은 보통 저럴 경우 군용화폐를 따로 주지 않습니까?
    독일군도 2차대전 때 그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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