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이탈리아와 세력균형 이론의 탄생(1) 유럽외교사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외교 (1)


<구이차르디니의 이탈리아 역사>

[유럽 외교사]


르네상스 시대의 세력균형론


출처- The Balance of Power: History and Theory. Contributors: Michael Sheehan - Author. Publisher: Routledge. Place of publication: New York. Publication year: 1996.


로마 제국과 이후의 중세, 암흑시대라는 긴 세월은 세력균형론의 발전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로마는 수세기 동안 지중해 전역을 지배할 수 있었고, 바로 이같은 사실 때문에 세력균형을 고민할 여지가 없었다. 실제로, 기록된 역사에서 놀라운 것은 세력 균형의 이론과 실제가 대부분의 기록된 역사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력균형은 국제관계의 상수였다기 보다는, 근대적 발전, 즉 르네상스의 자식이었다. 봉건적 중세는 국가체제로 특징되지 않았고, 군주들은 교황과 황제로 대표되는 권위에 눈치를 살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진정한 세력균형론의 발전을 전망하게 하는 사상이 존재하기도 했다. 가령, 필립 드 코민 Philippe de Commines  은 15세기말에 부르고뉴와 프랑스를 위해 일했던 외교관이었고, 유럽을 하나의 모형으로 설명했다. 즉 국가들의 힘이 인접국 혹은 이웃국가들의 힘에 의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균형을 이루고,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포르투칼은 스페인과 베네치아는 피렌체 등등. 이것은 이웃국가들이 다른 이웃국가들의 세력과 정책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는 경향을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세력균형 정책에 대한 묘사가 아니었다. 이는 단지 중세가 르네상스 시대에 자리를 내주고, 더 근대적인 국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해서, 국제정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었다.


캐플란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세력균형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모델과 유사한 것이 처음으로 출현한 것은 유럽이라는 큰 무대에서가 아니라, 15세기말 이탈리아 도시국가 체제라는 소우주에서 였다.


어느 정도는 현실이 이론 발전에 선행했다. 많은 역사가들이 15세기말의 이탈리아를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특징짓고 있고, 5개의 강력한 도시국가들이 한 국가가 이탈리아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이다. 가령 버터필드 Butterfield 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독특한 이탈리아의 체제가 축소된 형태의 국가체제를 만들어냈고, 즉 특정 지역 내의 국가들이 그들이 더 두려워하는 국가들에 대항해서, 그들이 덜 두려워하는 세력을 지원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주적은 베네치아였고, 세력균형 정책을 주도한 것은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 Lorenzo de Medici 였다. 넬슨에 따르면, 근대적 국제관계는 1450년경 이탈리아에서 출현했고, 5개의 주요 이탈리아 국가들간의 경쟁으로 완전한 의미의 세력균형정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5개의 주요 강대국은 베네치아,밀라노,피렌체,나폴리 그리고 교황령 국가였다. 베네치아가 가장 강했고, 가장 공격적이었고, 1450-1499년 동안 변동을 거듭하는 동맹의 결성으로 견제당했고, 이를 견제한 것은 주로 피렌체,밀라노,나폴리의 3국동맹이었다.


1494년, 이탈리아 반도로의 프랑스 세력의 난입(샤를8세의 이탈리아 침공)이 이탈리아 체제를 붕괴시켰다. 이전의 50년 동안, 이탈리아 반도는 힘의 균형 논리가 작동하면서 상대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확실히, 16세기 초의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1480년대를 황금기라 회고했고,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균형상태에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세력균형론의 발전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세력균형 정책에 관한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는 세력균형 이론이 기반하고 있는, 국제관계 이론의 탄생에 기여했다. 마키아벨리는 국가가 도전적 힘이고, 자신의 시민에게 충성을 요구할 수 있으며, 한정될 수 있고, 옹호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정치체라는 사상을 확립했다. 이같은 개념의 완전한 수용은 정치가 세속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때까지 완벽하게 완성되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의 두번째 위대한 공헌은 국가가 국내적 사업만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한정되며, 국가를 다른 국가들과 연결시키는 국제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특수한 구조를 가진 질서라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의 팽창주의적 국가들을 견제하기 위한 피렌체 지도자들이 주도한 동맹의 논리를 반영하지도 않았고, 세력 균형의 원리의 지배를 받으면서 탄생 중이었던 국제관계 구조의 기초를 탐구하지도 않았다.


루첼라이 Rucellai 와 구이차르디니 Guicciardini  같은 피렌체 학자들도 1480년대의 이탈리아를 팽창주의적 베네치아와 피렌체,나폴리,밀라노 동맹간의 균형상태로 묘사했다.구이차르디니에 따르면, 로렌초 데 메디치 치하의 피렌체 외교정책은 이탈리아 상황에서 균형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한 국가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 강해져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구이차르디니가 마키아벨리를 능가했다. 군주론의 저자는 세력균형체제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지도 않았고, 세력균형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보여주지도 않았으며, 가령, 국가는 특권을 공유하기 위해 더 강한 나라의 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마키아벨리의 생각은 세력균형론과는 거리가 멀었고,근대적 전망이기 보다는 중세적이었다.


버터필드에 따르면, 마키아벨리가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운 것은 그가 한 국가는 인접국이 전쟁할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세기에서, 이 문제는 언제나 세력균형이라는 틀을 통해서 해석되었지만, 마키아벨리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구이차르디니도 세력균형론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는 이탈리아를 균형상태에 도달한, 세력들간의 체제라는 관점으로 묘사하면서, 이론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구이차르디니는 이탈리아에서의 세력균형의 작동을 나폴리의 페르난도의 도움을 받은, 피렌체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천재성 덕분이라 주장했다. 넬슨이 인용한 구이차르디니의 묘사에서, 이탈리아 체제는 베네치아에 맞서는 동맹이었고, 베네치아는 의심의 여지없이 동맹의 한 국가에 비해서는 월등했지만, 그들이 힘을 모았을 경우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구이차르디는 이탈리아 체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해서, 모든 국가들이 서로를 유심히 관찰했고, 따라서 한 국가가 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전체적인 균형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나의 체제의 일부로 국가가 움직인다는 인식은 중요한 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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