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기병이 사회조직에 주는 영향은?" 유럽외교사

16세기 전쟁의 창과 총 전술 (1)

[전쟁의 역사]


"보병,기병이 사회조직에 주는 영향은?"


출처- 스테판 모릴로 stephen morillo의 대포와 정부 : 유럽과 일본 사례의 비교연구 guns and government a comparative study of europe and japan


보병과 기병간의 전투에서 응집성이 매우 중요하다. 충격 전술이 동원된 백병전에서, 기병은 높이와 속도에서 우위를 가진다. 하지만, 보병의 견고한 대형에 맞서, 기병은 균열을 만들어야만 백병전을 벌일 수 있고, 보병의 대형을 붕괴시킬 수 있다. 이같은 균열을 만드는 것이 실제로, 고전적인 기병 돌격의 목적이었고, 돌격으로 이같은 목적을 심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 말이 열을 지어서 빠르게 돌격해오는 가공할 장면은 보병 진형의 몇몇 병사들을 겁먹게 만들어 대열에서 이탈, 도주하게 만들 수도 있고, 기병이 돌파하기 위한 균열을 만들 수도 있고, 기병은 이같은 잇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진형이 응집성을 유지한다면, 말은 장애물을 만나면서 뒷걸음치게 될 수 있고, 기병은 돌파하지도 후퇴하지도 못하는, 막다른 상태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보병 대형에게 응집성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답은 매우 단순하다 : 믿음! 대형속의 각 병사들은 그의 전우가 도망치지 않는다는 점을 믿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같은 신뢰는 어떻게 생기게 될까? 이것은 바로 전투 대형의 사회적 기원과 관련이 있다 : 고대 그리스의 같은 폴리스의 이웃들은 서로 알고 지낼수 있었고, 전장에서의 오랜 제휴로 서로 신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자연적으로 응집력이 있는 집단에게도 훈련과 경험이 필수적이었고, 심지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진형에서는 더욱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보병 조직은 훈련과 경험을 통해 응집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좋은 보병의 사회적 배경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훈련이 제도화될 수 있는 것은 보병 대형을 만들기에 충분히 많은 수의 남자들을 모아, 훈련 동안 그들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중앙 권력의 존재라 할 수 있다. 결국 강력한 보병은 강력한 정부에 의존한다.


하지만, 기병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 왜냐하면, 뛰어난 기병을 위한 기초가 보병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기동성이 기병의 장점이고, 기동성이 기사에게 자연적인 공격,추격,도주를 위한 무기를 제공한다. 기병은 보병 보다 소규모로도 더 효율적일 수 있고, 따라서 대규모 부대 훈련이 덜 필요했다. 뿐만아니라, 오래전부터 기병 양성은 보병 양성보다는 더욱 개별적인 훈련이 실시되었고, 기병이 보병 보다 유지 비용이 더 비쌌다.


그 결과, 전통 세계에서 기병은 사회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지방의 전사 엘리트들의 존재는 많은 전통적인 문명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이 계급의 자식들이 군사적으로 길러졌고, 계급 내부의 사회적 유대를 통해 작은 집단으로 훈련받았고, 권력의 위계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물론 중앙권력이 자신의 군사적 정책적 목적에 따라, 이들 엘리트들의 기술와 힘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중앙권력은 이들 엘리트들과 자주 불화에 빠지게 되었고, 특히 권력 배분 문제에서 그랬다. 따라서 좋은 기병이 되는 엘리트들은 따라서 강력한 중앙 권력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용이하게 존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좋은 보병을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 권력이 필수적이었지만, 좋은 기병을 위해서는 필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덧글

  • 이궁 2012/08/10 14:33 # 삭제 답글

    그러다보니 중세,너무 광범위한 시간이지만

    기병 1명에 보병 100명이 쫒기는 상황이 나옵니다.


    확실히 중앙집권이 안되면 강력한 보병이 구성 불가능합니다.


    다만 예외로서 용병대장의 대단한 규율이라는 해법도 있습니다.

  • 파리13구 2012/08/10 14:36 #

    감사합니다. ^^

    이같은 논리의 연장선 상으로,

    16세기 이후 유럽 군대가 보병으로, 대규모 보병으로 재편된 것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들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는 논리가 나오게 됩니다.
  • 이궁 2012/08/10 14:36 # 삭제 답글

    자기만 죽을까봐 전부 같이 도망가는 100명.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인데..

  • 일화 2012/08/10 14:51 # 답글

    서양의 경우, 말씀하신 중세에서 근세로의 변화외에도 저는 고대에서 중세로의 변화도 군사기술의 변화라고 생각하고 있고, 최근의 대중민주주의도 양차대전에서 보병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죠. 문제는 이건 극동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인데, 로마제국 붕괴기에도 살아남아 다시 수당제국을 건설한 중국이나 군의 주력이 기병 엘리트에서 보병집단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제가 유지된 일본의 경우는 같은 이론으로 설명되기 어렵죠. 제 생각으로는 군사기술(문화)의 변화가 사회변화를 선도하려면 국가간의 무력충돌이 잦고 경쟁이 심하다는 특징이 추가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파리13구 2012/08/10 15:04 #

    지적에 감사합니다. ^^
  • 셔먼 2012/08/10 23:19 # 답글

    스위스는 강력한 중앙정부 같은 것은 없었지만 대신 주변에 합스부르크나 밀라노 공령, 사보이, 프랑스와 같은 적들이 많아서 이들에게 종속당하지 않기 위해 함께 뭉쳐서 살아남는 방법을 택했지요. 그렇기에 보병의 단결력이 중시되었고 잦은 전투에서도 대부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군사력이 유달리 강했던 베른은 단독행동을 하려는 경우가 자주 보였죠..
  • 零丁洋 2012/08/11 00:23 # 답글

    기병인 군사엘리트는 곧 군지휘관이죠. 이 엘리트 집단이 존재했던 국가는 군사문화를 발전시키고 결국 유럽의 군사강국으로 성장하죠. 반면에 이런 엘리트 집단이 없던 합스부르크는 군지휘관 조차 용병대장에 의존하다 결국 해체되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