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외교 (2) 유럽외교사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외교 (1)

III. 외교적 전통의 탄생


A. 이탈리아 국가들간의 긴밀한 상호활동을 통해서, 외교의 개념이 변했다.


1. 1450년경부터 영주 대사 permanent resident ambassadors 永住 大使를 상호 파견했고, 대사들은 정보를 수집하고, 면책특권을 누리면서, 자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활동을 했다.
2. 옛날부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정규화 되었다.
3. 선물 전달과 기념식 같은 옛 전통이 중요한 것으로 남았다.


B. 이같은 혁신이 다음 세기에 유럽에서 채택되었다.


1. 기독교세계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옛 대사 개념이 자국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2. 베네치아 주재 영국 대사 헨리 우튼 Henry Wotton 은 새로운 현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농담했다 : "대사는 자국을 위해서 해외에서 거짓말을 하기위해서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다." “An ambassador is an honest man [who is] sent to lie abroad for his country.”


IV. 1494년의 이탈리아의 재앙


A. 외세의 개입으로, 이탈리아 실험실이 거대한 갈등의 시합장으로 돌변했다. 


1. 프랑스,스페인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이 이탈리아 패권을 두고 경쟁했다.
2. 1494년의 프랑스의 침공은 매우 중요하고, 몇몇 역사가들은 이것을 근대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B. 밀라노 공,루도비코 스포르차,일 모로 Ludovico Sforza, “il Moro”(재위 1476-1500)는 나폴리 왕국의 알폰조2세에게 협받을 받자, 프랑스왕 샤를8세 (재위 1483-1498)에게 나폴리 점령을 제안했다.  


1. 나폴리 왕국에 대한 권리를 요구한, 샤를8세가 1494년 9월에 강력한 보병과 포병과 함께, 알프스를 건넜다.
2. 샤를8세는 재빨리 많은 도시들을 격파했고, 1495년 나폴리를 점령했다.
3. 이같은 외세의 침략이 기존의 세력균형을 파괴, 더욱 더한 침략을 초래했다.


C. 밀라노,베니스,교황령 국가 그리고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이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측에 가담, 1495년 신성동맹 the Holy League of 1495 을 결성하면서, 프랑스에 저항했고, 프랑스는 곧 철수했다. 


1. 프랑스의 철수 이후, 이탈리아 체제는 균형을 되찾지 못하게 되었다.
2. 프랑스와 스페인은 수차례의 침공을 통해, 이탈리아에 대한 주도권 싸움을 했다.
3. 1500년의 그라나다 조약 Treaty of Granada 에서 스페인과 프랑스가 나폴리 분할에 동의했지만, 스페인이 더 많이 가졌다.
4. 이탈리아를 둘러싼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의 발루아 가문 간의 전쟁 Habsburg-Valois wars 은 스페인의 우위를 1529년 캉브레 조약 the Treaty of Cambrai in 1529 에서 프랑스가 인정하기 전까지, 이후 30년동안 계속되었다.   


D. 이탈리아는 더 큰 문제를 두고 싸우는 외세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 합스부르크와 발루아 왕조간의 경쟁


V.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1469–1527)


A. 이탈리아 재앙 직후, 외교가이자 작가 마키아벨리가 시대의 교훈과 희망을 반영하는 글을 남겼다.


1. 그의 사상은 논쟁적이었고, 당시에 비난을 받았지만,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키아벨리적"이라는 형용사가 사용된다.
2.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고,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마키아벨리가 유럽 무대에서 그의 도시를 위해서 외교관으로 일했다.
3. 메디치 가문이 1512년에 복귀하자, 마키아벨리는 투옥되었고, 고난을 받았다.
4, 은퇴해서, 그는 군주론을 썼고, 1515년에 완성했다.


B.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기존의 이상주의적 도덕률과 결별을 알리는 것이었다.


1. 그는 정치를 이상이 아닌, 현실로 다루는 정치 과학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2.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류가 좋은 법과 좋은 무기가 융합된 그의 국가 모델의 기초였고, 이를 다스리는 군주는 사랑받기 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나쁜 일을 할 의향을 가지고 있다.
3. 마키아벨리는 또한 이탈리아의 위대함을 부활시키고, 이탈리아를 야만인으로부터 구해낼 군주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
4. 군주론의 정확한 의도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 책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대하다.




덧글

  • 르네상스 2014/12/01 20:39 # 삭제 답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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