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외교 (1) 유럽외교사

<1500년경의 이탈리아>

<출처- Vejas Gabriel Liulevicius, Renaissance Statecraft in Italy 를 번역.>


[유럽외교사]
[르네상스][이탈리아]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외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문화와 예술의 재생 뿐만아니라 영주 대사 resident ambassadors 와 같은 우리 시대까지도 중요한, 근대 외교의 형식을 개척했다. 15세기 중반 이탈리아에는 밀라노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피렌체 공화국,교황령 국가,나폴리 왕국 등 5대 도시국가가 있었고, 이들 국가들간의 복잡한 경쟁이 외세의 침략으로 이탈리아 체제를 붕괴시키게 되는, 1494년의 재앙 이전까지 세력균형의 좋은 사례를 제공했다. 마키아벨리의 외교적 가르침은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며, 기존의 국제정치 및 도덕과의 역설적인 단절과정에서 출현했다. 


개요


I. 이탈리아 양식


A. 르네상스 이탈리아(1350-1550) 시대에 탄생한, 국가간 정치의 중요한 혁신은 무엇인가?


B. 이탈리아 반도는 새롭게 등장 중인 국제 정치의 실험실이었다.


1. 역사가 개럿 매팅리는 "상시 외교라는 근대적 형식의 외교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창조물들 중 하나이다." “Diplomacy in the modern style, permanent diplomacy, was one of the creations of the Italian Renaissance."라고 주장했다.
2. 이탈리아는 신성 로마제국과 교황청간의 초기 대립의 결과로,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보호되는 공간이었다.
3. 12세기 경, 이탈리아 영토는 제국의 지배로부터 사실상 자유로웠다.
4. 도시국가들은 자신만의 정체성과 행동의 자유를 주장했다.
5. 이같은 힘의 공백 상태에서, 5개의 국가들이 출현, 주변의 군소 정치체들을 통합시켜 나갔다 : 밀라노,베네치아,피렌체,교황령 국가 그리고 나폴리 왕국
6. 소규모로, 이 국가들은 이후 유럽에서 등장하는 강력한 왕국들의 특징인, 선명한 행정을 보여주었다.
7. 이탈리아의 번영은 유럽의 존경과 시샘을 받았고, 지리적 위치, 무역의 연결 그리고 번영하는 도시 경제에 기반했다.


C. 이탈리아 국가들은 군사적,외교적으로 경쟁하면서, 새로운 양식의 국제관계를 만들어 나갔다.


1. 콘도티에로 condottieri 라고 불리는, 군사 청부인, 즉 용병대장이 국가들을 위해서 용병을 관리했다. [참고- 콘도티에로 위키페디아 항목- http://ko.wikipedia.org/wiki/%EC%BD%98%EB%8F%84%ED%8B%B0%EC%97%90%EB%A1%9C]
2. 용병들은 전쟁을 장기화시키는 전쟁 양식을 발전시켰고, 부상자를 줄이려 노력했다.
3. 용병 고용은 편을 바꾸고,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기도 했기 때문에, 위험했다.
4. 매팅리는 제국과 교황청간의 경쟁이라는 맥락에서, 이 국가들의 출현은 기독교세계 최초이며, 오랜 기간동안 유일한, 순수한 세속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고, 국가들은 힘의 효율적 사용과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관심을 집중했다.


D. 이탈리아 양식의 외교가 알프스 북쪽의 나머지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그 이후부터 외교의 기초가 되었다.


II. 이탈리아 국가들과 그들의 관계


A.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 공국은 비단 무역의 교차로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부유했다.


1. 1380년대부터, 밀라노의 비스콘티 지배자들이 롬바르디아로 확장을 추진,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했다.
2. 피렌체와 베네치아가 이같은 밀라노의 발전을 막기위해서 동맹했다.
3. 1447년, 마지막 밀라노 공이 사망하면서, 평민 출신 용병대장 프란체스코 스포르차가 집권, 국가를 중앙집권화 했다.
4. 중요한 외교적 재편과정에서, 스포르차는 밀라노의 대외정책을 친 베네치아에서 친 피렌체로 수정했다.


B. 베네치아는 "가장 고요한 공화국" “Most Serene Republic” (Serenissima)으로 알려졌고, 강력한 해상 세력이었다.


1. 베네치아의 최고 행정책임자는 종신임기의 통령이었다. 원래 시민이 통령을 선출했으나, 12세기 이후 480명의 귀족으로 구성된 대회의에서 선출되었다. 그 외에 베네치아의 중요한 정치 기구는 원로원과 10인 위원회였다.
2. 도시는 지중해에서 상업 제국을 확장했다. 오스만제국과는 갈등 및 협력 관계였다.
3. 1450년 이후, 베네치아가 밀라노의 팽창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북부 이탈리아에서의 영토 확장을 추진하자, 피렌체,로마,밀라노가 동맹을 결성, 이를 견제했다.
4. 1500년 이후, 베네치아는 지중해가 무역의 중심적 지위를 상실하면서, 장기적 침체를 시작했다.


C. 여왕의 도시 혹은 르네상스의 탄생지라 불리는 피렌체는 공화국적인 정부 형태가 유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434년부터 1498년까지 금융가문 메디치의 지배를 받았다.


1. 그 화폐인 플로린 florin은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이것이 도시의 부를 증명했다.
2. 토스카나 지방을 지배한 피렌체는 밀라노와 주기적으로 충돌했고, 밀라노는 피렌체를 고립시키겠다고 위협했다.
3. 1450년경, 밀라노의 스포르차가 밀라노의 대 피렌체 정책을 수정했다.
4. 피렌체의 위대한 통치자는 위대한 로렌초 Lorenzo the Magnificent  (1464-1492)였다.
5. 하지만, 로렌초 사후, 이탈리아의 세력균형이 파괴되었고, 메디치가의 지배도 끝났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도미니크파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개혁을 주장하면서 피렌체 시정을 장악했다.


D. 중부 이탈리아의 교황령 국가는 종교적 신분에도 불구하고, 점점 다른 세속적인 이탈리아 국가들처럼 행동했다.


1. 교회의 대분열의 위기 이후, 교황들은 지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2. 교황 율리오2세  Julius II (재위 1503-1513)는 전사 교황으로, 개인적으로 전장에서 군대를 지휘했다.
3.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이 용병을 고용했던 것처럼, 1506년 교황 율리오2세가 오늘날까지도 존재하는 스위스 근위대 the Pontifical Swiss Guard 를 창설했다.
4. 교황 대사들이 파견되었던, 로마는 외교적 거래와 소문의 중심지였다.


E. 나폴리 왕국은 이탈리아 남부의 중심세력이었다.


1. 시칠리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칠리아 연합왕국 Kingdom of the Two Sicilies 으로 알려졌다.
2. 르네상스 시대의 나폴리 왕국의 역사는 프랑스계의 앙주 가문과 스페인계의 아라곤 가문 사이의 갈등의 역사였다. 이후 스페인의 지배가 확립되었다.


F. 1454년의 로디 조약 Peace of Lodi은 이탈리아에서 탄생한 세력균형의 고전적 표현이었다.


1. 피렌체의 코시모의 주도로, 수십년 동안의 갈등이 종식되었다.
2. 평화의 목표는 한 이탈리아 국가가 다른 이탈리아 국가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고, 외세의 힘을 빌리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3. 결과적으로, 국가들은 회담과 대사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4. 밀라노,피렌체,베니스,나폴리,교황령 국가로 구성된, 이탈리아 동맹 The Italian League 은 외세에 맞서기로 합의했다. 
5. 1494년까지 로디 조약이 이탈리아 정치에 상대적인 안정을 제공했다.
6. 전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이탈리아 체제를 위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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