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국가이성,세력균형론의 대두배경은?" 유럽외교사

헨리 키신저의 <외교> 제3장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제3장 보편성에서 균형으로 - 리슐리외, 오렌지공 윌리엄 그리고 소 피트


오늘날 역사가들이 유럽의 세력균형 체제라 부르는 것은 17세기에 등장한 것이며, 보편성을 향한 중세적 열망이 붕괴되면서 등장했다. 보편성이란 세계 질서에 관한 하나의 개념이며, 로마 제국과 가톨릭 교회의 전통의 혼합을 의미했다. 세계는 천국을 닮은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마치 하나의 신이 천국을 지배하듯, 한명의 황제가 속세를 다스리고, 한명의 교황이 보편 교회를 관장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정신 안에서,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의 봉건 국가들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지배하에 있었다. 17세기에, 이 제국이 유럽을 지배할 수도 있게 되었다. 프랑스는 자신의 국경이 라인 강 서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영국은 이 제국에 비해면 주변부 국가에 지나지 않았다.만약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모든 영토들을 자신의 관할하에 두는데 기술적으로 성공했다면, 제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관계는 중화제국과 중국의 주변국들간의 그것과 유사해지게 되었을 지도 모르고, 프랑스는 베트남 혹은 한국에, 그리고 영국은 일본에 비견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중세 대부분 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그 정도의 중앙 통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한가지 이유는 적당한 교통,통신 수단의 결여로, 매우 광대한 영토들을 한데로 묶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성로마제국이 교회의 감독권을 정부의 감독권으로부터 분리시켰기 때문이었다. 파라오 혹은 로마황제와는 다르게,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신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다른 서유럽 지역과 심지어 동방교회가 통치하는 지역에서, 각각의 주요 요직의 임명권이 중앙 정부에 있었다는 점에서, 종교와 정부가 결합되어 있었다. 종교 당국은 서유럽 기독교가 권리로 주장한 자치적 지위를 주장하기에는 수단도 권위도 결여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 교황과 황제간의 잠정적인 그리고 때로, 실질적인 대립이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궁극적인 입헌주의와 권력분립의 조건이 되었다. 이것이 여러 봉건 지배자들이 싸우는 양측으로부터 모두 이익을 얻어내면서, 자치를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파편화된 유럽을 만들었다. - 공국,주,도시 그리고 주교령 등의 잡동사니들의 유럽이었다. 이론적으로 모든 봉건 영주들이 황제에 대한 충성의 의무가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했다. 다양한 왕국들이 제국 왕실이라 주장했고, 중앙 권력으로 거의 사라졌다. 황제는 구태의연한 보편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할 가능성은 없었다. 유럽의 주변부에 있는, 프랑스,영국 그리고 스페인은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남았지만, 신성로마제국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15세기부터 황제 제위를 거의 항구적으로 요구하게 되었고, 신중한 결혼을 통해, 스페인 왕위를 얻었고, 막대한 자원을 보유하면서, 신성로마제국이 자신의 보편적인 요구를 정치체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실현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16세기 초반, 황제 카를5세가 오늘날의 독일,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북부,체코 공화국,슬로바키아,헝가리,프랑스 동부,벨기에,네덜란드를 포함하는, 중유럽 제국 탄생의 전망을 제기할 정도로 제국의 권위를 부활시켰다. 이같은 영토는 너무 잠정적으로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유럽의 세력균형 같은 체제가 등장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종교개혁으로 영향으로 약화된 교황이 지배적인 유럽 제국의 전망에 일격을 가했다. 강할때, 교황은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타격을 주었고, 강력한 경쟁자였다. 16세기에 힘이 퇴조하면서, 교황은 제국 탄생에 독이 되고 말았다. 황제들은 스스로 신의 대리인을 자임했고, 다른 사람들로 그들을 신의 대리인으로 보아주길 원했다. 하지만, 16세기에 황제는 프로테스탄트 영토에서 신의 대리인이기 보다는 쇠락한 교황에 연결된 빈의 군사 지도자로 간주되었다. 종교개혁은 반역적인 군주들에게 종교 그리고 정치적 영역에서 새로운 행동을 자유를 주었다.그들과 로마와의 관계 단절은 종교적인 보편성과의 단절이었다. 그들이 합스부르크 황제와 벌인 투쟁은 군주들이 더이상 황제에 대한 충성 의무를 종교적 의무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통일성이 붕괴되면서 등장한 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의 이단을 정당화시키고, 그들의 관계들을 정식화시키기 위해서 몇가지 원칙들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국가이성과 세력 균형 개념을 발견했다. 각각은 상호 관련되었다. 국가이성은 국가의 이익을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세력균형이 보편 군주에 대한 향수를 대체시켰고,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국가들이 대체로 다른 모든 국가들의 안전과 발전에 공헌한다는 위안을 제공해 주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9 대표이글루_역사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