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작전계획과 제1차세계대전"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각국의 개전 명분은?"


<1914년 러시아군의 공격>

[제1차세계대전]
[8월개전]
[러시아군 전략]


"러시아의 작전계획 A와 제1차세계대전"


작전계획 A "Plan A" 로 알려진, 1914년 러시아의 전쟁 계획은 제1차세계대전 이전에 러시아가 고안한 것으로, 만약 독일군의 주력이 프랑스를 공격한다면, 러시아의 주력이 갈리치아의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공격하면서, 부수적으로 독일의 동 프로이센을 강력하게 공격한다는 전략이었다. 또한, 러시아가 작전계획A에 주력할 동안, 독일의 선공이 동쪽으로 향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 G" 도 있었다.


작전계획 A의 개념은 1879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동맹을 맺으면서 탄생했다. 1890년 독일 카이저 빌헬름2세가 러시아와 독일간의 재보장조약의 갱신을 거부하자, 러시아는 매우 당황했다. 러시아는 산업화를 위한 자본이 필요했고, 프랑스는 동맹이 필요했다. 이렇게 독일 카이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화해가 불가능하다고 간주했던, 러시아와 프랑스, 양국이 서로 접근, 동맹국이 되었고, 1894년 군사동맹으로 발전했다. 노불동맹에 의거, 러시아는 프랑스에 대한 독일의 공격, 독일의 지원을 받는 이탈리아의 프랑스 공격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서 독일을 공격해야만 했다. 반대로, 프랑스는 독일 혹은 독일의 지원을 받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러시아를 공격한다면, 독일을 공격해야만 했다.


이후 수년동안, 프랑스에게는 독일이 주적이었지만, 러시아는 합스부르크가 군사적인 주적이었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격파해야만, 러시아가 원하던 발칸 반도에서의 패권과 지중해로의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1900년 무렵, 프랑스는 러시아가 지상군을 독일에 대한 북부전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한 남부 전선의, 두개의 전선으로 나누어 파병할 것이라 확신했다. 프랑스는 러시아의 동원 속도가 느린 점을 이용, 독일이 프랑스를 먼저 공격할 것이라 정확하게 예측했기 때문에, 프랑스는 러시아에게 동원령 15일차에 동 프로이센을 공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러시아는 느린 동원속도 때문에, 동원령15일차에 충분한 병력을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이후에도 프랑스는 이를 계속 요구했고, 러시아의 동원속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 철도 개발을 위해서,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철도는 미완성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전략 철도 건설은 독일군 수뇌부가 유럽의 전면전이 더 지체될수록, 독일의 승리 가능성은 더 낮아지게 될 것이라 확신하도록 만들었다.


1904-1905년의 러일전쟁에서의 패배와 1905년의 혁명에도 불구하고, 1910년의 러시아 지도자들은 프랑스의 요구사항을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1911년,러시아는 프랑스에게, 동원령 15일차에 독일 공격을 위해, 80만명을 파병하겠다고 약속했다. 1912년, 러시아는 작전계획 19를 승인했다. 이것은 작전계획 A,G를 반영해서, 유리 다니로프 Yuri Danilov 장군이 만들었고, 2개의 전선에서의 동시 공격을 제안하고 있었고, 주력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공격하지만, 부수적이지만 동 프로이센도 강력하게 압박할 것이라 계획했고, 동원령 15일차에 이를 위한 병력배치를 배부분 완료할 계획이었다.   


1914년초에, 작전계획 A는 러시아군의 33%를 북부전선에 배치, 우선 동 프로이센을 점령하고, 이후 베를린을 향해 진격시킬 예정이었다. 러시아군의 52%는 갈리치아를 공격,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패배시킬 것이었고, 나머지 15%는 발트해와 흑해 해안 방어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러시아가 작전계획 A를 실행할 준비를 할 동안, 러시아의 지상군 최고 사령관은 동원령 9일차까지 작전계획 A와 G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다. 동원 시간표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1/3만이 동원령 15일차에 배치 완료될 예정이었다.


1914년 7월 31일, 러시아의 전시 동원령이 선포되었고, 이틀 후, 짜르의 삼촌인 니콜라이 대공이 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되었다. 8월 6일, 그는 작전계획 A를 선택했다. 하지만, 8월 9일, 프랑스 정부의 절망적인 요청에 따라, 대공은 동 프로이센 공격을 강화하기 위해서, 작전계획을 최종 수정했다. 8월 14일, 러시아 동원령 15일차에, 동 프로이센 공격 작전의 시작이 명령되었다. 다른 전선의 러시아군은 8월 18-19일에 공격을 시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많은 역사가들은 프랑스를 돕기 위해서, 동 프로이센을 때이르게 공격한 것이 러시아를 전쟁 초반의 재앙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초기 패배들은 전쟁 이전 작전계획의 결함 때문이기 보다는, 잘못된 지휘 그리고 전선의 두 군사이의 조정 오류의 산물이었다. 

출처- The Encyclopedia of World War I : A Political, Social, and Military History, 2005, 1029-1030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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