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이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각국의 개전 명분은?"


<대 오스트리아 합중국 구상 - The United States of Greater Austria>

[제1차세계대전]
[7월위기]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이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이전의 발칸위기 동안, 세르비아와의 전쟁 요구를 견제했던 것은 바로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였다.


그의 암살로, 이제 오스트리아-헝가리 내부의 주전파와 주화파간의 정치적 균형이 극적으로 변했다. 이전의 외교적 위기동안,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세르비아와 러시아와의 전쟁에 반대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의사결정과정에서, 그의 목소리는 전쟁을 주장하는자들을 견제하는데 결정적이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정치적 계획은 왕국을 개혁하는 것이었고, 특히 헝가리 세력을 힘을 감소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무력을 사용할 용의도 있었고, 헝가리아와 내전도 불사할 작정이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대 오스트리아 합중국 The United States of Greater Austria 으로 재탄생 시키려 했다. 20세기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게르만족과 헝가리인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머지 10개의 민족들, 가령, 체코인,폴란드인,루테니아인 Ruthenians, 루마니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바키아인,보스니아인,세르비아인,슬로베니아인,이탈리아인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되었고, 단지 크로아티아인들만이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 the Kingdom of Croatia and Slavonia 에서 제한적인 자치를 누리고 있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지도를 과격하게 다시그리려 했던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민족적으로, 언어적으로 구분되면서, 자치를 누리는 주들 "states" 로 구성된, 대 오스트리아 합중국 The United States of Greater Austria 로 재결집시키려고 했다. 이 계획하에서, 문화적,언어적 정체성이 장려될 것이고,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가 시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구상은 이중 왕국의 헝가리의 강한 반대에 직면했다. 왜냐하면, 개혁의 결과로 헝가리가 많은 영토를 잃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황태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국내 문제를 외국과의 전쟁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세르비아,러시아와의 전쟁이 합스부르크 왕국의 국내적 정치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죽음은 대외 정책에서 자제와 신중을 강조했던 중요한 목소리의 소멸이었다. 더 나아가, 그의 암살은 왕국 내부에서 세르비아와의 전쟁 도발을 원했던 주전파 세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가장 갈망했던 것은 바로 오스트리아군 참모총장 콘라드였다.   

한편, 일부 역사가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방문 당일의 사라예보의 낮은 수준의 경호가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장교집단이 황태자를 암살위험에 노출시키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관련 증거는 없다고 한다.




덧글

  • 라라 2012/04/25 22:23 # 답글

    한편, 일부 역사가들은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방문 당일의 사라예보의 낮은 수준의 경호가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장교집단이 황태자를 암살위험에 노출시키기 위해서 의도된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관련 증거는 없다고 한다.

    일리있는 주장이군요

    생각보다 더 현명한 황태자네요. 이 정도일 줄이야..
  • KITUS 2012/06/01 09:37 # 답글

    1차대전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암살만 안당했으면 오늘날 까지 오스트리아는
    합중국이 되어 유럽의 거대국가로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네요...
    더구나 역사학자들이 1차대전의 패배때문에 부숴진거지 민족주의 운동으로
    자멸한건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세계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라
    할 수 있겠네요;;

    현재의 자국들의 지위나 크기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오스트리아나 헝가리 청년들은
    정말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네요...

    "가브릴로 프린치프 이 XX끼! 영원히 저주나 받아라!"라고 말입니다;;;
  • 멋진만남 2016/04/10 15:34 # 삭제 답글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소피 폰 호헨베르크는 1900년 7월 당시 만37세, 만32세라는 늦은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문제는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신분에 걸맞지않는 여자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친척들의 냉대를 받아야했다는거~!!!! 그로부터 59년뒤인 1959년 일본에서도 당시 황태자였던 아키히토 천황도 쇼다 미치코와 결혼했을때 일본황족들과 화족들의 반대가 얼마나 셌는지를 짐작할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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