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케와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각국의 개전 명분은?"


[제1차세계대전]
[7월위기]
[독일군 전략][슐리펜 계획]


"헬무트 폰 몰트케와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

아니카 몸바우어 Annika Mombauer 의 헬무트 폰 몰트케와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 Helmuth von Moltke and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2005 에 따르면, 몰트케의 영향력이 1914년의 독일을 전쟁으로 몰아가는데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카이저 빌헬름2세의 독일제2제국을 파괴한 것은 몰트케와 독일군부였다는 것이다.


관련 서평을 소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카이저 빌헬름2세가 몰트케를 독일군 참모총장에 임명한 것은 1906년 1월 1일이었고, 소 몰트케 "younger Moltke" 는 1914년 11월 1일에 해임되기 전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이 책에서 몸바우어는 몰트케의 참모총장 재직 기간을 분석하고 있고, 특히 독일군 참모본부의 작전계획이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에 어떻게 공헌했는지를 규명하고 있다. 그녀는 "몰트케의 영향력이 독일을 전쟁으로 몰아가는데, 기존에 생각했던 것 보다 더욱 결정적이었다."고 결론내렸다.


몰트케는 그의 전임자인 알프레드 폰 슐리펜 Alfred von Schlieffen 참모총장(1891-1905)의 군사전략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몸바우어의 연구는 "슐리펜 신화 Schlieffen myth" 즉, 만약 몰트케가 슐리펜의 원래 작전을 수정하지 않았다면, 1914년 독일이 성공했을 것이라는 회고적 주장을 분석하고 있다. 몸바우어는 몰트케의 작전 수정을 분석, 그녀는 또한 몰트케의 슐리펜 계획 수정이 1914년 9월의 독일의 마른 전투 패배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하고 있다.


독일군 참모본부는 독일 제2제국의 군사계획과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여러 구조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었고, 모든 독일 기관들은 공격적이고, 일관성이 없고, 전문적이지 못하고, 충동적이었던, 카이저 빌헬름2세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한다. 몸바우어는 이같은 카이저 중심의 독일의 의사결정 구조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고, 이같은 의사결정 구조와 여러번의 국제적 위기들간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있다.


이같은 국제적 위기들이 몰트케로 하여금,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프랑스와 특히 러시아의 군사력이 확장일로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은 독일편이 아니라고 몰트케가 판단했다는 것이다. 1914년 6월, 몰트케는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었다 : "만약 마침내 올것이 오고야 만다면, 우리는 준비되어 있다. 더 빠를수록, 우리에게 더 유리하다."


몸바우어에 따르면, 슐리펜/몰트케 계획의 집행 과정에서, 서부전선의 두개 군단을 동부전선으로 배치하기로 했던 결정은 당시 동부전선의 위험한 상황을 고려했을때, 이해할 만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같은 병력재배치가 독일의 프랑스 진격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몸바우어는 이것 때문에 독일이 마른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며, 전후의 슐리펜 신화화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몸바우어는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에서 몰트케의 중요성은, 그가 독일을 전쟁으로 몰아가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에 있다. 그는 외교문제를 무시한채, 슐리펜 작전만을 강조하면서, 독일에게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간적 압박하에서, 독일 장군들과 외교관들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몸바우어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1914년 7월위기 당시의 몰트케가 마지못해 전쟁을 결심한 지도자였다고 보는 것과는 다르게, 독일의 몰트케 참모총장은 호전적이었고, 야심적이었으며,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덧글

  • 대공 2012/04/18 16:29 # 답글

    그러고보니 보급전의 역사라는 책에 보면 애초에 슐리펜 계획 자체가 강행군에 의존하는 빠듯한 스케쥴의 작전이라면서 결국에는 병사들이 지쳐서 불가능하다라던가의 이유로 그래도 몰트케는 슐리펜의 작전을 그래도 좀 더 실행이 가능할 정도로 수정했다고 한다 이런식의 말을 했다고 기억합니다.
  • 파리13구 2012/04/18 16:32 #

    제 생각으로는, 외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슐리펜 계획의 수정이 문제가 아니라, 슐리펜 계획 자체가 독일에게 하나의 재앙이었다고 봅니다.
  • Montcalm 2012/04/18 16:48 # 답글

    뭐 .. 전쟁을 대비해서 계획이 있는게 아닌.. 계획을 위해 전쟁이 있던 꼴이니깐요..
  • Montcalm 2012/04/18 16:48 #

    저 역시 해당 보급전의 역사라는 서적에서 나온 견해를 지지하는 편입니다. 애초에 슐리펜 계획자체는 어떻게 하던 성공할수없는 계획이었다는점.. 특히 보급이나 병참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2/04/18 16:53 #

    네, 1914년 7월의 독일 외교 기록에 나타난 몰트케의 강박관념을 보면, 안습입니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 분쟁의 국지화는 가능했습니다.
  • BeNihill 2012/04/19 00:11 # 답글

    국가전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전쟁을 위한 국가전략...
  • 파리13구 2012/04/19 09:55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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