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7월, 프랑스 푸앵카레의 고민은?"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각국의 개전 명분은?"

<레이몽 푸앵카레>

1914년 7월, 프랑스는 독일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한 외교적 입장하에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탄생했고, 비스마르크 동맹체제로 완성된, 프랑스 포위구도가 해체되고, 오히려 독일이 역포위된 상황이었다 : 독일에게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아니라 사면불가 (四面'佛'歌) 였다!"


프랑스는 러시아와 확고한 군사 동맹관계에 있었고, 비록 영국으로부터 군사적 지원 보장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프랑스는 전쟁시 영국의 지원을 확실하게 만드는, 군사,해상 협정을 영국과 체결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명목상 동맹이었던, 이탈리아와 루마니아는 프랑스 및 러시아와, 전쟁시의 중립을 약속하는 조약을 체결했고, 프랑스편으로 전쟁에 가담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프랑스에게 유리한 외교적 환경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대통령 푸앵카레는 보불전쟁에서 독일에 빼앗긴 로렌이 고향이었고, 열정적인 애국자였고, 맹렬한 反-독일주의자였다. 그런 푸앵카레가 프랑스에게 주어진 절호의 외교적 기회 앞에서 유혹을 느끼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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