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대 오스트리아 백지수표"-7월 5일,1914년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각국의 개전 명분은?"

1914년  7월 5일, 독일이 오스트리아에게 백지수표를 주다.

우선 1914년 여름, 베를린 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였던 소제니에 대해서 알아보자.

소제니 Szőgyény


소제니(1841-1916)는 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외교관으로, 오랫동안 베를린주재 대사였다. (1892년 10월 24일-1914년 8월 4일)


1914년 여름, 소제니는 연로했고, 반쯤 귀가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를린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였다. 7월 4일,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베르히톨트 Count von Berchtold가 독일 카이저에게 세르비아를 응징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그의 비서실장 호요스 Count von Hoyos 를 베를린에 특사로 파견했다.

7월 5일, 호요스는 소제니 대사와 함께, 포츠담에서 카이저와 오찬을 함께 했다. 그날 저녁 호요스는 베르히톨트 장관에게 보낸 전보에서, 빈이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심하든, 심지어 그것으로 인해서 유럽에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한 독일의 지원 full German backing"이 있을 것이며, 단지 이를 빠르게 실행해 달라고 요청받았다고 보고했다.

7월 6일, 독일 카이저의 약속은 베트만-홀베그  von Bethmann-Hollweg 총리와 아르투르 치머만 Arthur zimmermann 외무부 차관의 확인을 받았다. 이렇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격에 대한 독일의 지원을 약속하는, 이른바 "백지수표"를 받았다.  


독일 카이저는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해 즉각 행동에 나서야만 한다고 보았다. 심지어 이것으로 인해 러시아와 전쟁을 한다고 해도, 오스트리아는 독일이라는 동맹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었지만, 카이저는 러시아가 전쟁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라 보았고, 무력에 호소하기 이전에 심각히 고민할 것이라 확신했다. 한편, 카이저는 평화를 사랑하는 프란츠 요제프1세의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응징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만약 오스트리아가 이같은 천재일우( 千載一遇 )의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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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13구님의 이글루 : "1914년 7월,독일 외무차관의 허풍은?" 2012-04-04 18:53:09 #

    ... 저의 백지수표 발행 사건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제목 : "독일의 대 오스트리아 백지수표"-7월 5일,1914년 주소 - http://kk1234ang.egloos.com/2854922 ]이날, 오스트리아의 호요스 특사 Count Hoyos 는 그의 오랜 친구인 아르투르 치머만 Arthur zimmermann, 독일 외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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