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 유럽외교사

[자료]사이크스-피코 협정,1916년


[제1차 세계대전]


"러시아와 제1차세계대전"


- "제1차세계대전을 도발한 것은 러시아고,프랑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도왔고, 영국은 속아서 전쟁에 참여했다?"


최근에, 역사가 션 맥미킨 Sean McMeekin이 제1차세계대전의 러시아적 기원 The Russian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을 출간했다. 관련 서평을 소개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1차세계대전은 누구 책임인가? 기존의 지배적 견해에 따르자면, 독일에 책임이 있다. 하지만, 션 맥미킨은 다른 범인을 지목하고 있고, 그것은 바로 러시아다. 그의 주장은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러시아 제국 문서보관서 관련 문서 연구에 근거하고 있다.


통설에 따르면, 장래의 전쟁에서 프랑스,러시아와의 양면 전쟁 fighting on two fronts 을 계획했던 독일은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을 점점 더 두려워했다. 시간이 자신의 편이 아님을 절감한 독일의 정치인과 장군들이 러시아와의 예방 전쟁 a pre-emptive war을 위해서, 페르디난드 대공의 암살 이후, 세르비아를 단죄하고자 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희망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러시아를 원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작은 분쟁이 유럽의 전면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맥미킨은 독일이 아니라 러시아가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과의 전쟁 도발을 위해서, 1914년의 7월 위기를 이용한 것은 바로 러시아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정교한 외교술을 구사해서, 프랑스를 러시아 계획을 위한 적극적인 동반자로 만들었고, 영국을 속여서 러시아를 동정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독일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고, 러시아가 전쟁준비단계에서 전쟁을 선포하는 과정,즉 부분동원,총동원,선전포고를 하는 과정에서의 독일의 역할이 위기를 심화시킨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러시아도 일단 동원령이 내려진 이상, 독일도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러시아가 7월 31일, 총동원령을 선포했을 때, 7월 25일 이래로 비밀 동원령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러시아는 유럽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전쟁을 시작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이 연구의 가장 수정주의적 측면이 드러나며,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우리의 이해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우리는 독일제국의 야심과 그에 대한 공포 그리고 독일의 출현으로 유럽의 기존 세력균형이 파괴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기 보다는, 18세기 말 이래로 유럽 국제 관계를 지배했던 중요 문제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동방문제 "Eastern Question" 다. [유럽사에서 동방문제는 오스만제국 쇠퇴에 따라 제기되었던, 외교적,정치적 문제를 말한다. 이 표현은 하나의 특정한 문제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스만제국이 지배하던 유럽 영토의 불안을 포함하는, 18,19,20세기 동안에 제기되었던 일련의 문제들을 포함한다.]


맥미킨에 따르면, 제1차세계대전은 오스만 계승전쟁 "War of the Ottoman Succession"으로 불릴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완전한 몰락과 그 영토에 대한 처분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전쟁 목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파괴, 러시아의 콘스탄티노플 장악, 러시아의 흑해 해협 통제(보스포루스,다다넬스 해협) 그리고 더욱 야심차게, 페르시아 지배 였다는 것이다. 1914년의 유럽 열강이 모두 개입한 전면전의 발발은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사조노프 Sergei Sazonov의 성공적인 외교술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사조노프가 러시아에게 가장 유리한 동맹 교전국들을 만들어냈고, 위의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는 방향으로 러시아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영국은, 독일이 벨기에의 중립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기 때문에, 러시아측 동맹군으로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이고, 저자에 따르면, 영국의 제1차세계대전 참전은 치명적인 오판이었다는 것이다. 19세기 동안 영국은 러시아의 야욕에 맞서서, 오스만 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전을 지켜왔지만, 제1차세계대전에서는 자신의 기본적 이익들과 배치되는, 부적절한 동맹에 속아서 가담했다는 것이다. 1916년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통해, 영국은 러시아의 콘스탄티노플 지배 요구를 인정했으며,이를 위해서 1915년, 갈리폴리 전투에서 수많은 영국인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1916년, 러시아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러시아는 독일에게 패배하기도 했지만, 코카서스에서 터키를 상대로 성공적인 전쟁을 벌였고,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아르메니아인의 반란을 사주했고, 페르시아에서 강력한 지위를 획득했다. 결국 1916년의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오스만 제국 분할이라는 러시아 제국의 오랜 꿈의 실현을 영국과 프랑스가 동의해 준 것으로 보였다.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시오 - http://kk1234ang.egloos.com/2853862]


하지만 바로 그런 찰라에,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제정 러시아는 그 종말을 고했고, 러시아의 팽창 야욕은 당분간 저지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덧글

  • 라라 2012/03/25 11:22 # 답글

    영국이 속았다기보단 속아준거겠지요
  • 파리13구 2012/03/25 13:53 #

    글쎄요...
  • 라라 2012/03/25 20:09 #

    최근 개봉한 영화 셜록 2에 보면 실제는 영국 정부도 전쟁을 원해

    모리어티의 행동을 눈감아 주는 걸로 나오더군요.

    나폴레옹의 야망을 좌절시킨 영국이 러시아나 독일이 싸우게 해서

    어부지리를 노리지 않은 걸

    속아서라고 보는건 무리죠
  • 유리멘탈 2012/03/25 16:55 # 답글

    헤에... 신기하네요. 그럼 처칠은 영국에서도 제일가는 호구가 되어버리는 건가요...
  • 파리13구 2012/03/25 20:36 #

    그런 셈입니다...
  • deokbusin 2012/03/26 10:45 # 답글

    베츠미야 단로-혐한, 혐중으로 유명한 저술가입니다-의 주장에 따르면 사이크스-피코 협정은 중동에 대해서 오랜 경험을 가진 영불의 지혜가 빛나는 협정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서부전선에서의 압력을 덜기 위한 러시아의 견제가 필요했던 영불로서는 동맹국에게서 빼앗아 러시아에게 줄 수 있는 이권이라고는 지중해 및 중동 뿐이기도 했지요.
  • 파리13구 2012/03/26 11:35 #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이같은 러시아에 대한 양보라는, 동방문제에 대한 영국의 입장이 전쟁 전에 나왔는지, 아니면 지적하신 대로 서부전선에서 압력을 덜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나왔는지가 궁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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