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3세의 대외정책 기조는?" 유럽외교사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éon Bonaparte, 1808년 4월 20일 ~ 1873년 1월 9일)는 최초의 프랑스 대통령이자 두 번째 프랑스 황제이다. 프랑스의 마지막 세습군주이기도 하다.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이자 의붓외손자로 1848년에 2월 혁명 이후 수립된 새로운 공화국에서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쿠데타를 통해 제2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에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 자체가 중요했고, 아마도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자산이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은 또한 숙명적인 정치 유산이었고, 영광과 제국의 새 시대에 대한 대중의 기대를 높였다.


역사가 노먼 리치에 따르면, 나폴레옹3세는 이같은 대중적 기대를 충족시키려 노력했고, 프랑스를 다시금 유럽의 지배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나폴레옹3세는 대외정책에서 3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1. 그는 영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영국은 그의 삼촌,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성공의 주된 걸림돌이었다. 그는 영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영국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해서, 그의 대외정책의 성공을 용이하게 하려했다.


2. 그는 자신의 대의를 위해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려 했다. 민족주의의 잠재적인 힘은 그의 삼촌도 인정했지만, 보나파르트는 이것을 이용하는데 실패했다. 나폴레옹3세는 외세의 지배로부터 자유,독립을 원하는 민족들의 보호자를 자처하려 했고, 이들 민족들을 지원하여,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프랑스의 정치적,도덕적 주도하에, 유럽을 재편하려 했다.


3. 민족들과의 긴밀한 유대 속에서, 그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프랑스를 견제할 목적으로 탄생한 국제질서를 파괴하려 했고, 이를 통해 프랑스가 유럽에서의 패권을 부활에 방해되는 주요 장애물을 제거하려 했다.


당시 러시아가 빈체제라는 국제질서의 주된 보호자였기 때문에, 나폴레옹3세의 대외정책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를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당시 그에게 행운이었던 것은 러시아에 대한 공포가 프랑스에 대한 공포를 압도할 정도로 유럽 국가들에서 강력했다는 점이고, 나폴레옹3세는 곧 자신이 反 러시아 정책을 추진하는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같은 대외정책적 맥락에서 보면, 나폴레옹3세와 히틀러는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나폴레옹3세에게 빈체제가 걸림돌이었다면, 히틀러에게는 베르사유체제가 주요 장애물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 자신의 조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탄생한 국제체제의 파괴를 대외정책의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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