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제1차세계대전 연구에 준 영향은?" 유럽외교사

"제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전쟁목표는?"


1939년, 제2차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제1차세계대전 원인론 연구의 기본시각을 제공한 것은 시드니 페이의 <제1차세계대전의 기원>(1928)이었다. 페이는 전쟁 발발의 책임을 특정 국가에 돌리지 않고, 집단책임론을 제기했다. 이후 전쟁 발발의 구조적 원인, 당시 유럽체제의 모순에 대한 관심이 관련 연구의 중심이 되었다.


[시드니 페이의 연구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시오 - "페이의 제1차세계대전 원인론 연구" http://kk1234ang.egloos.com/2850210 ]


이같은 제1차세계대전 발발의 배경원인에 관한 상대적으로 조용한 연구의 방향을 급반전 시킨 것은 바로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였다고 한다. 즉 1939년까지 관련 학자들은 제1차세계대전이 어느 쪽의 책임이 아니라, 원인은 구조와 체제에 있다고 보았지만, 제2차세계대전에서 누구가 유죄인지, 즉 히틀러가 유죄인 것이 확실해지자, 이제 모든 사람들이 제1차세계대전에서 누가 유죄인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유럽과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것은 바로 히틀러였고, 유대인,슬라브인 그리고 주인 종족인 게르만족에 대해서 열등한 인종에 대해서 인종 전쟁을 자행한 것도 바로 히틀러였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에서는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 분명했다. 그것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리고 뉘른베르크 재판은 누가 유죄인지를 분명하게 했다. 그것은 바로 나치였다. 반면에, 제1차세계대전에서는, 독일 카이저 빌헬름2세가 사법심판을 받지도 않았고, 1914년의 전쟁 발발에 누가 책임이 있는지도 불분명했기 때문에, 제2차세계대전과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렇다면, 이같은 제2차세계대전의 경험이 이후 제1차세계대전 기원 연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우선 영국 역사학자 테일러 A. J. P. Taylor가 히틀러와 나치즘이 독일역사에서 예외적인 미친 짓에 속한다는 통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영국에서 테일러가 1944년 정치전쟁국 Political Warfare Executive (PWE) 을 위해 독일사 관련 책을 썼다. 하지만 해당 부서는 이 책이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부했고, 이 책은 <독일사 강의 The Course of German History>라는 제목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제3제국이 전체 독일 국민의 역사적 희망을 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희망이란, 유럽을 지배하고, 슬라브인들을 노예화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선량한 독일인들은 드물었다는 것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양차대전의 실제 원인은 같았다.


테일러의 연구는 독일과 이탈리아 학자의 연구로 지지를 받았다. 루드히히 데히오 Ludwig Dehio 는 독일 기록학자였고, 13세기 전문가였고, 1948년에 <세력균형 혹은 패권 Gleichgewicht oder Hegemonie>을 출간, 유럽에서 4세기 동안의 세력균형의 역사를 분석했다.


루이지 알베르티니 Luigi Albertini는 이탈리아 언론인으로, 거의 20년동안, 제1차세계대전으로 귀결되는 유럽 외교사를 상세하게 서술한 책을 썼다. 그는 1941년에 사망했지만, 그의 3부작인 <1914년 전쟁의 기원 Le origini della guerra del 1914>은 1942-1943년에 출간되었다.


이상의 3인의 제1차세계대전 기원 연구는 1930년대에 지배적이었던 전쟁 원인론에 대해 정면 도전하는 것이었다. 데히오는 카를로스5세,펠리페2세, 루이14세 그리고 나폴레옹이 유럽의 세력균형에 제기했던 도전을 분석하면서, 독일의 빌헬름2세와 히틀러는 유럽의 패권 장악을 도모했던 사람들의 전통의 계승자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제1차세계대전이란 독일이 1914년의 7월위기를 유럽패권 장악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아 도발한 전쟁이고, 주변부의 열강인 영국과 러시아에 이에 저항한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한편 알베르티니는 1914년의 7월 위기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비타협적 태도를 격려하고, 전쟁을 촉진시킨 것은 바로 독일이고, 독일은 영국이 타협적으로 나올 것이라 잘못판단했고, 발칸 문제가 독일과 오스트리아 동맹에게 유리하게 해결될 것이라 오판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3인의 연구는 각각 다른 관점, 1000년 동안의 독일사, 400년 동안의 유럽에서의 세력균형 그리고 전쟁 이전 위기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통해서, 제1차세계대전 원인에 관한 1930년대의 합의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도전받게 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3인의 역사가들은 독일의 제국주의적 목표와 패권적 야망이 제1차세계대전 그리고 이후의 히틀러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로 귀결되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과감한 주장을 그들이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학계의 대응은 차분했고, 신중했다. 어떠한 새로운 논쟁도 시작되지 않았다. 관련 논쟁이 격화되는 것은 1961년 프리츠 피셔의 연구가 발표된 이후였다. 

출처- Gordon Martel, Explaining World War One: debating the cau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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