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전투와 아이젠하워" (3) 유럽외교사

"디엔비엔푸 전투와 아이젠하워" (2)

미국의 입장과 베를린 외무장관 회담


나는 1954년초에 궁지에 몰린 프랑스군을 좀더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이 전쟁을 조속하게 매듭짓기 위해, 만약 3가지 기본조건만 충족된다면, 미국이 군사개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국제법에 저촉되지 않을 것
둘째, 세계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
셋째, 미국 국회의 동의.


첫번째 조건은 분명했다. 즉 프랑스 정부가 요청하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둘째, 세계 여론의 지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자유세계의 지지를 얻기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검토했다. 그 하나는 프랑스의 동맹국인 3국이 유엔에 원조를 요청하는 것, 다른 하나는 미국이 영국과 함께, 앤저스 (Anzus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미국 3국의 공동 방위체) 차원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의 경우처럼, 각국이 명목상으로 약간의 군대를 파병하면, 미군의 군사개입 명분이 설 것이었지만, 만약 그렇지 못하면 제국주의적 행동이라는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었다. 뿐만아니라 중공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세번째 조건은 더욱 복잡했다. 베트남에 자금과 물자를 지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병력을 파견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1954년 1월 25일,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외무장관 회담이 베를린에서 열렸지만, 한국과 인도차이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해 4월 26일 제네바에서 회의를 개최하자고 합의를 보았을 뿐, 아무런 건설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논쟁만 거듭하다가 끝났다.


전세의 악화와 미군 지상군 투입문제


1954년 3월 13일, 디엔비엔푸를 포위하고 있던 월맹군이 병력을 대폭 강화하여, 대규모 공세를 가해 왔다.


당시 전황에 따라, 새로운 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만약 중공군이 미그기를 몰고 베트남의 프랑스군 기지를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만 하는가?


당시에 꾸준히 검토된 것은 미국 지상군을 베트남에 파병하는 문제였다. 전쟁이 이미 장기화하면서, 만약 프랑스가 이 전쟁에서 패하면, 많은 자유민들이 공산주의 지배하에서 신음할 것이 명약관화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베트남에서는 자신만이 효과적인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프랑스군의 보조부대로 미군을 베트남에 투입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헌법상 국회의 동의없이 전쟁지역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는 경우는 긴급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나의 군사고문들 중에는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전쟁을 국제적인 개입으로 수습하기 보다는 차라리 포기하거나, 군사적인 패배에 임박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4월 4일, 인도차이나 문제에 영국을 참여시키기 위해, 처칠 총리에게 다음과 같을 서신을 보냈다.


"나는 각하가 디엔비엔푸에서의 프랑스군이 행하고 있는 용감한 전투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현재 디엔비엔푸의 정세는 절망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와 무관하게, 나는 프랑스가 단독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우려합니다. 우리가 프랑스에게 상당한 자금과 물자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이지경입니다. 따라서 프랑스를 뒤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프랑스가 패배, 인도차이나 전체가 공산주의자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면,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역학관계로 볼때, 나와 각하의 전략적 입장을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만들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인도차이나의 정세는 우리에게 중대한 결단을 내리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네바 회담까지 불과 4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회의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들 사이를 이간질 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는 프랑스가 지난 8년동안 피를 흘려온 이 전쟁이 하루속히 매듭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도차이나 문제는 탁상공론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베트남 문제에 대한 나의 견해는 지난 월요일 연설에서 덜레스 국무장관이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인도차이나에서 소련과 중공이 자신의 정치체제를 강요하는 것은 자유세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 단정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이같은 위협이 날로 증대되어. 현재에 와서는 우리의 통일된 행동으로 대처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나는 이러한 차원에서, 프랑스를 지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지역에서 공산주의 침투를 경계하는 각국이 새로운 연합체를 구성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나는 영국과 미국 이외에, 프랑스,인도차이나 3국,호주,뉴질랜드, 태국,필리핀 등을 연합체의 회원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 연합체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것입니다.


이러한 연합체는 강력해야하고, 필요시에는 전투에 참가할 용의가 있어야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 볼때, 우리가 적당히 시기에 일치 단결하여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히로히토,무솔리니,히틀러를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이같은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마땅히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3일 후, 나는 처칠로부터 영국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오는 4월 10일 런던에서, 덜레스 장관과 협의하고 싶다는 요지의 답장을 받았다. 이 짧은 답장은 영국이 이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열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영국이 적극적으로 우리 편에 가담하지 않는 이상, 미국 국회의 동의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국회동의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했다.


첫째,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은 다른 자유 국가, 즉 영국이나 필리핀 등의 연합체와 공동보조를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프랑스는 미국의 원조가 결코 프랑스 식민지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인도차이나의 독립에 동의해야 한다.

셋째, 프랑스는 우리가 군사개입을 해도, 자신의 병력을 철군해서는 안된다.


나는 제네바 회의 이전에, 관련 자유국가들의 연합체를 조직하기 위해, 덜레스 장관을 파리와 런던에 파견했다.


출처- 세계의 대회고록 전집 18 아이젠하워, 한림출판사,1977,189-194쪽




덧글

  • 행인1 2012/02/25 22:49 # 답글

    한때는 '한국군'을 베트남에 파병하여 프랑스군을 돕는 방안도 고려되었지만 기각되었다는군요.-_-;;;
  • 파리13구 2012/02/26 06:08 #

    헉, 그런 논의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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