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의 독불화해의 동기에는 영미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프랑스 외교: 드골과 미테랑의 차이는?
시사저널의 "외교에서 드골은 나보다 한수 아래" [75호,1991년 4월 4일]라는 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991년의 걸프전쟁은 프랑스의 반미주의가 약해져 있음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의 참전지지 여론을 이끈 것은 프랑수아 미테랑이었다. 그는 특히 2차대전때 미국이 참전하여 유럽을 도운 사실을 강조하면서 프랑스가 빚을 갚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론 이러한 미테랑의 태도는 드골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매우 못마땅하다. 드골은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는 것이 프랑스 외교정책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전통을 세웠으며. 프랑스 사람들은 그 전통이 언제까지나 지켜져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미테랑의 외교고문을 지낸 레지 드브레는 미테랑과 드골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가의 독립과 서방세계의 단결 둘을 놓고 볼 때 후자가 전자의 우의에 있다고 보는 것이 미테랑의 태도이다”라고 그는 말한다(주간지 ≪레베느망 뒤 죄디≫인터뷰). 이것은 드골의 입장과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미불관계가 드골의 시대와는 딴판으로 우호관계에 들어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가 미국을 견제하고 미국과 거리를 둠으로써 스스로 국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드골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미테랑은 그런 생각에서 이미 이탈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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