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1년 6월 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미소정상 회담에서 미국의 케네디와 소련의 흐루쇼프가 베를린 문제 등의 주요 관심사들을 논의했다.
베를린 문제 대해서, 소련 흐루쇼프의 주요 관심사는 독일이 통일되어 다시금 소련에 고통을 가할 능력을 갖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과 동독 난민의 서베를린 으로의 대량 탈출 사태에 따라, 베를린이 공산주의 체제를 벗어나려는 자들의 탈출구로 악용되는 사태를 차단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흐루쇼프의 측근들은 이러다간 동독에는 울브리히트 와 그의 정부 情婦 밖에 남지 않겠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한편, 미국의 중대 관심사는 서방의 서베를린 접근권이었다.
흐루쇼프는 케네디에게 제2차세계대전 중에 소련이 2000만명의 목숨을 희생시켰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독일이 다시금 제3차세계대전의 포문을 열 규모의 군사력을 다시 획득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소련은 통일 독일 경계하기 위해, 가능하다면 동독, 서독 양측과 평화협약을 체결할 것이지만, 만약 여의치 않으면 동독하고만 성사시킬 계획이다.
미국이 흐루쇼프의 이같은 통보에 경악했던 것은 평화협약으로 1945년 이후 합의된 모든 협정이 효력을 잃게될 것이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동독의 육상,공중 통로를 통한 서방의 베를린 왕래권도 포함되었다. 이에 따르면, 만약 미국이 평화 조약을 조인하면, 베를린은 자유도시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인을 거부하면, 서방측이 베를린을 자유롭게 왕래할 일체의 권리가 소멸될 것이었다.
이 빈 회담에서, 두 정상들은 베를린 문제로 인한 전쟁의 위험에 대해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흐루쇼프, "만약 미국이 독일 문제로 전쟁할 생각이 있다면, 그렇게 해라"
케네디, "우리의 접근권을 부인하는 평화조약은 호전적 행위나 다름없다."
회담의 말미에서, 대통령은 양국의 대치상황을 피하려 하는 자신의 바람을 피력했다. 동시에 케네디는 확고한 태도를 취했다.
이에 흐루쇼프가 화를 내면서, "미국이 소련에게 모욕을 주려 하는데 이것은 용납될 수 없다."
미국측 기록에 따르면, 두사람의 대화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끝났다고 한다.
케네디 - 소련은 베를린에 대해, 소련의 조치를 미국이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전쟁을 각오하라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흐루쇼프 - 미국이 전쟁을 원하면, 그것은 미국의 문제다. 전쟁을 위협하는 것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다.
케네디 -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다.
흐루쇼프 - 전쟁이든 평화든 미국 마음대로 결정하라. 하지만 동독과의 평화조약을 체결하려는 결정은 취소 불가능하고, 연말까지 아무런 합의가 없다면, 12월에 동독과 그 조약을 체결할 것이다.
케네디 - 그렇다면 이번 연말은 추운 겨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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