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의 독일정책의 혁명적 성격은?" 유럽외교사

드골의 독불화해의 동기에는 영미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프랑스의 다른 어떤 지도자들 보다도, 독일을 싫어할 이유가 많았던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 1959년 대통령이 된 후 독일과의 화해정책을 추진한 배경은 무엇일까?


키신저에 따르면, 그것은 민족감정,이데올로기가 아닌, 국가이성 raison d'etat 에 따른 판단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드골은 지난 300년동안 프랑스의 중유럽 정책의 핵심이었던, 독일을 약하고, 분열되도록 만든다는 리슐리외적 전통과 결별했다.


드골이 갑작스러운 충동에 이끌려서, 독불화해를 추진하도록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17세기 리슐리외 이래, 프랑스 정책은 이웃의 불길한 독일을 분열되거나 혹은 약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아마도 둘 다를 원했을 것이다.


19세기에, 프랑스는 자신만으로는 독일을 견제할 힘이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따라서 프랑스는 영국,러시아와 동맹을 맺었고, 동유럽의 신생 약소국가들과 자잘한 동맹을 결성했다.


하지만, 제2차세계대전 이후, 불행하게도 이같은 견제방안도 사라졌다.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확인된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힘을 합해도, 독일을 패배시키기에는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현실이었다. 뿐만아니라 소련군이 엘베강을 따라 주둔하고 있고, 동독이 소련의 위성국가인 상황에서, 모스크바와의 동맹은 독일 견제라기 보다는 소련의 유럽지배로 끝장날 위험이 있었다. 드골이 독일과의 전통적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프랑스 미래가 숙적과의 우호에 있다고 결론내린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출처- 키신저, 외교, 576-5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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