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위기는 독불화해의 결정적 계기였다!" 유럽외교사

드골의 독불화해의 동기에는 영미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사전에 따르면, 수에즈 위기란, 1956년 7월 26일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아브델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일어난 위기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무력개입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반대로, 결국 11월초 영불의 군사행동은 중단되고 말았다.


11월 6일, 영국총리 앤서니 이든과 프랑스 총리 귀 몰레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기로 결정한 바로 그날, 파리를 방문 중이던, 독일총리 아데나워는 프랑스 외무장관 크리스티앙 피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프랑스와 영국이 절대로 미국과 소련과 같은 강대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방법만이 있다 : 그것은 바로 단결해서 유럽을 건설하는 것이다. 영국은 아직 이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수에즈 사태가 영국이 생각을 바꾸도록 준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와 독일은 낭비할 시간이 없다 : 유럽이 프랑스를 위한 복수가 될 것이다!"


이 발언은 이후의 독불 양국의 정책 논리가 될 것이다. 그 결실이 바로 1963년의 샤를 드골과 콘라트 아데나워간의 독불 화해협력조약 (엘리제 조약)이다.


반면,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유럽통합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외교 정책에서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다. 즉 수에즈 위기는 영국 외교의 결정적인 친미화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출처-키신저, 외교, 547-548쪽

- 수에즈에서의 굴욕 이후, 프랑스 외교와 영국 외교에게 새로운 본능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발생하면, 프랑스 외교는 유럽을 강조하면서, 독불협력을 강조하고, 영국 외교는 유럽에서 등을 돌리면서, 영미협력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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