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초 독일 문제의 핵심은?" 유럽외교사

세력균형 이론 a balance of power



17세기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30년전쟁에서 중부 독일의 패권을 장악하는데 실패한 이후, 오스트리아는 모든 독일을 지배하고자 하는 희망을 접었다. 이같은 오스트리아의 야망은 다른 독일 공국들의 견제를 받았고, 특히 프로이센의 견제를 받았다.


빈회의 당시, 프로이센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견제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2세가 슐레지엔을 점령한 이후, 독일 패권을 위한 오스트리아의 주장은 프로이센의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럽의 안정을 위해 핵심적인 문제는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양국과 나머지 독일 공국들간의 관계였다. 적어도 30년전쟁 이후, 독일내부의 힘의 역관계가 유럽에 동일한 역설을 제공했다 : 만약 독일이 약하거나 분열되면, 유럽의 이웃국가들, 특히 프랑스가 팽창주의의 유혹에 시달렸다. 반면에, 독일 통일의 전망은 주변국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통일 독일에 대한, 17세기 프랑스의 리슐리외의 공포는 유럽이 공유하는 것이 었고, 특히 프랑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1609년 영국의 한 관찰자가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 "독일에 대해, 만약 독일이 한 왕조에 의해 통일된다면, 나머지 유럽에게 충격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독일은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 너무 약하거나 혹은 너무 강했다.


따라서 빈회의 주도자들은 다음을 인정했다. 만약 중부 유럽이 평화와 안정을 되찾으려면, 17세기 프랑스 리슐리외의 작업을 무효로 만들어야만 했다. 리슐리외는 약하고 분열된 중부 유럽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프랑스에게 팽창을 위한 여지를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빈의 정치인들은 통일된 독일이 아닌, 안정된 독일을 만들었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양대 독일 국가들이 되고, 바바리아, 뷔르템베르크, 작센 같은 중간 규모의 연방국가들이 그 뒤를 따랐고,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 이전에 300여개에 달하던 작은 공국들이 30여개의 공국들로 흡수통합되어, 1815년에 독일 연방 German Confederation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외세의 침략에 대해 공동으로 방어할 목적을 가진 독일 연방은 기발한 발상의 산물이었다. 즉 독일 연방은 프랑스의 공격을 받기에는 너무 강했지만, 다른 국가들을 침략하기에는 약했고, 탈집중화되어 있었다.


출처- 키신저, 외교, 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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