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에 따르면, 80년대말, 레이건의 임기가 끝날 즈음, 아시아의 정황은 수십 년 이래 가장 고요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중국,일본,한국,인도차이나,동남아 등에서 벌어진 반세기 동안의 혁명과 전쟁이 진정되고, 평화와 번영을 지향하는 아시아체제가 탄생했다. 아시아체제는 주권을 가진 정부, 공인된 국경, 각국 내부의 정치, 이념적 노선에는 서로 간섭하지 않겠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공유한 개별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이같은 아시아 체제의 탄생이 한국에게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체제의 주요 버팀목인 현재의 중국체제가 존재하는 이상, 두 개의 한국간의 전쟁이 최대한 억제될 것이지만, 아시아체제의 힘의 역관계에 변화를 줄 가능성이 있는 한반도의 통일의 탄생도 마찬가지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논리가 통용되는 체제가 바로 아시아체제가 아닐까? 즉 현 아시아체제하에서 통일 한국의 출현은 현상유지와 세력균형의 원칙을 뒤흔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국,미국,일본,러시아의 관점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 통일은 현 중국체제의 운명과 깊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 체제가 유지되는 이상, 북한 체제의 급변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뿐만아니라, 머지않은 장래에 중국이 만약 1989년 소련이 경험한 체제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한반도 통일 분위기가 급조될 가능성도 높다고 전망된다. 아무튼, 한반도 통일 문제는 중국문제라 본다.
통일 한국의 외교 기본전략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외교적 환경 조성을 위해 아시아체제를 뒨흔들었다가, 통일 이후에는 재빠르게 아시아체제의 재탄생에 기여하는 명민한 외교전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것은 바로 19세기 독일의 비스마르크의 외교전략이다. 독일의 통일 자체가 당시의 빈 체제의 원리에 위반이었던 상황에서, 비스마르크는 빈체제를 뒤흔들었다가, 통일 직후 베를린체제라는 새로운 유럽 평화체제를 구축해 내는데 성공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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