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관점에서 본 보스포루스 Bosphorus 해협" 유럽외교사



불어 위키페디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보스포루스 해협 Bosphorus


보스포루스 해협(-海峽; 그리스어: Βόσπορος, 터키어: Boğaziçi, 문화어: 보스포르 해협)은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고,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터키의 해협이다. 길이는 30 km이며, 폭은 가장 좁은 곳이 750 m이다. 깊이는 36 에서 120 m 사이이다.


해협의 지정학적 역사


1453-1774 : 완전 봉쇄원칙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보스포루스와 다다넬스 해협이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제국의 규정에 따라, 외국 선박이 해협을 통해 흑해로 들어가는 것이 봉쇄되었고, 연안지대에서의 출입을 위해서는 술탄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흑해 봉쇄는 18세기초부터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는 흑해로의 러시아 팽창 때문이었다. 퀴취크카이나르카 조약 Treaty of Küçük Kaynarca에 따라 오스만 제국이 흑해 통제권을 상실했고, 러시아가 흑해의 북쪽연안을 획득, 흑해와 해협으로의 자국 상선의 항해의 자유를 획득했다. 이것은 더이상 술탄이 허가한 것이 아니라, 술탄의 의무가 되었다.


1774-1841년 : 해협이 국제관계의 중심이 되다.


18세기말,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과 1798년 12월 23일 방어 동맹을 체결, 전함이 각국의 항구에 정박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영국도 곧 이 조약에 가담했고, 흑해로의 항해권을 획득했다. 1801년, 프랑스와 오스만 제국간의 평화조약 이후, 프랑스 상선도 같은 권리를 얻었다.


1809년 1월 5일에, 오스만 제국과 영국간에 조인된, 다다넬스 조약은 해협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조약 제11조에 따라, 영국왕은 오스만 제국의 옛 법규를 존중할 것을 결의했고, 이에 따라, 오스만 제국이 평화시에 있을때, 외국 전함에게 보스포루스와 다다넬스 해협이 봉쇄된다는 것이었다.


해협들에 관한 국제 조약(1841년)


1841년 7월 13일 영국 런던에서 조인된 <해협에 관한 국제조약>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공식적으로 영원히, 평화시에 오스만 제국의 옛 해협에 관한 법규를 유지할 권리가 주어졌다. 즉 외국 강대국의 전함의 해협 진입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프로이센이 해협 봉쇄 원칙을 존중하기로 약속했고, 오스만 제국 뿐만아니라 다른 모든 열강에 대해서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이 조약은 러시아의 외교적 실패였고, 이렇게 러시아는 흑해에 갇히게 되었고, 흑해가 외국함대로부터 안전해 진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해협의 봉쇄는 평화시에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전쟁시 오스만 제국이 자신의 동맹국 전함에게 해협을 개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크림전쟁 (1853-1856)동안, 술탄은 세바스토폴 공격을 위해, 동맹국 원정대에게 해협을 개방했다.  


1856년의 파리 조약에서, 오스만 제국의 해협 봉쇄권이 재확인 되었고, 흑해 전체가 중립화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는 흑해 연안의 모든 해군 병기창을 철거하기로 약속했고, 이렇게 지중해로의 러시아 진출이 봉쇄되었고, 영국은 모든 국가의 전함에게 해협을 봉쇄한다는 자신의 정책을 고수했다.


이 원칙은 제1차 세계대전때까지 유지되었다. 하지만 이는 전후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장한 14개조 중 12조, 즉 "다르다넬스 해협은 모든 국가의 배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교역할 수 있는 통로로 영구 개방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반되었다. 결국 패전한 터키에게 부과된, 세브르 조약 Traité de Sèvres 에 따라, 평시 뿐만아니라 전시에도 해협의 완전한 자유 통행권이 보장되었다.


덧글

  • 크핫군 2012/01/20 13:23 # 답글

    오스만 투르크 이전에 보스포루스해협을 다스린 비잔틴 제국도 외국선박들이 이곳을 통행하는 것을 금했죠. 결국 이는 4차 십자군 이후에 풀리지만...
  • 파리13구 2012/01/20 13:25 #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 死海文書 2012/01/20 13:24 # 답글

    유럽 본토에선 독일이 큰 변수였는데 이곳에선 러시아가 문제였군요.
  • 파리13구 2012/01/20 13:26 #

    러시아는 크림전쟁부터 제1차세계대전 까지 일관되게, 해협 봉쇄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 死海文書 2012/01/20 13:36 #

    아무래도 부동항이 있어야 모든 면에서 이익인데 그게 안 되니 그랬겠군요.
  • 파리13구 2012/01/20 13:41 #

    그렇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