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불동맹의 결성과 슐리펜 계획의 관계는?" Le monde

[자료]노불동맹 Franco-Russian Alliance


역사가 테일러에 따르면, 노불동맹의 결성은 독일군사 전략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노불동맹의 결성에 따라 ,독일군 작전계획의 입안자인 슐리펜은 양면전쟁 two-front war 을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의 유일한 대안은 다른 적이 준비가 되기 전에, 한 적국을 격파하는 것이었다.러시아는 더 약한 적국이었다. 따라서 몰트케는 항상 동부전선에서 우선적으로 공세를 취하려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지리, 즉 러시아의 방대한 영토 때문에, 빠른 승리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서부전선에서 독일군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동부전선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프랑스를 한방에 격파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만약 그 한방이 충분히 강하다는 전제하에서 그랬다.


하지만, 당시상황에서 독일이 이같은 전략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따라서 슐리펜은 서부전선에서의 빠른 승리가 가능하도록 독일군을 증강시키자고 제안했다.


슐리펜 계획에 따른 중요한 정치적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이전까지 독일은 자신과 프랑스가 중립을 지킨다는 전제하에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간의 발칸 전쟁을 국지화시킬 수 있었다. 심지어 독일이 러시아와 전쟁을 하는 경우에도, 프랑스와의 서부 국경의 방어를 강화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슐리펜 작전에 따르면, 만약 독일이 프랑스를 격파하지 않으면, 독일이 러시아와 일전을 치를 수 없었다. 따라서, 전쟁이 발칸에서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독일은 우선 프랑스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양면전쟁에 대한 전망 때문에 슐리펜 계획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이 작전이 처음으로 전쟁을 자동적으로 양면전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슐리펜 계획 이전에, 발칸전쟁의 국지화 가능성이 있었다면, 계획의 등장과 함께, 발칸 전쟁이 양면전쟁 혹은 非국지적인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비스마르크의 평화체제하에서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간의 발칸전쟁이 억제되었고, 심지어 발발의 경우에도 국지화 가능성이 높았지만, 비스마르크 실각 이후, 발칸전쟁의 국제화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 가능성은 제1차세계대전에서 현실이 되었다.




덧글

  • 萬古獨龍 2012/01/09 20:02 # 답글

    비스마르크..... 여러가지로 대단한 걸 했다고 밖에는....
  • 파리13구 2012/01/09 21:20 #

    그렇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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