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를 포용하는 것이 묘책인 이유는?" Le monde

비스마르크의 한마디...

다음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직후, 비스마르크의 패자 포용에 관한 것이다.

출처- 강미현, <비스마르크 평전> 410-421 페이지

눈앞의 결과에 집착하는 국왕 빌헬름1세와 달리, 내일을 내다보는 비스마르크의 패전국에 대한 대응은 실로 묘책이라 할 만했다. 우선 그는 오스트리아로 하여금 가급적 굴욕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영원한 적으로 만들지 않으려 했으며, 미래의 동지로 남겨두려 했다. 중유럽에서 오스트리아는 강대국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패한 적을 동지로 바꾸어놓을 수는 있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영원한 적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그런 유동적인 상황 또한 철저하게 방지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계속해서 적으로 머물지 않게 함으로써 오스트리아를 지지했던 독일 남부 국가들의 반프로이센 정서를 잠재울 수 있는 전략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비스마르크의 이같은 전략적 취지는 프랑스나 러시아의 새로운 행보에 대비해서 충분히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장차 독일 내 국가들이 합심하여 대립하는데 오스트리아 만큼 자연스러운 동맹국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를 미래를 위한 동지로 남겨두면서, 한편으로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의 팽창정책을 견제해주는 일종의 둑으로 삼고,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의 간섭에도 공동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모두 열어놓은 묘책이었다. 실제로 훗날 1870-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는 정작 프로이센의 든든한 동맹국이 되어 비스마르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덧글

  • 死海文書 2012/01/03 09:42 # 답글

    볼수록 대단한 사람이네요.
  • 파리13구 2012/01/03 09:45 #

    비스마르크를 읽다보면, 비단 19세기 역사문제만이 아니라, 현재의 각종 문제에 대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합니다.
  • 사바욘의_단_울휀스 2012/01/03 10:33 # 답글

    비스마르크가 오래오래 살았어야했는데...
  • 파리13구 2012/01/03 10:38 #

    83세에 생을 마감했으니, 장수한 셈입니다...
  • 허안 2012/01/03 10:51 # 답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10인을 꼽아도 그 안에 들어갈 듯
  • 파리13구 2012/01/03 11:04 #

    그렇습니다...
  • 대공 2012/01/03 10:59 # 답글

    하지만 프랑스는 1차대전 후에.....
  • 파리13구 2012/01/03 11:04 #

    네, 달랐습니다.
  • 리리안 2012/01/04 14:08 # 답글

    한 때 이홍장이 동양의 비스마르크 취급을 받았지만 현실은...
  • 파리13구 2012/01/04 14: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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