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의 눈물? ^ ^ Le monde

다음은 중유럽의 패권을 두고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가 패권을 다투던 당시에 있었던 일이라 한다.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프러시아 병사들은 승자의 특권을 누리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건 만큼, 이는 당연한 것이라 간주될 수 있었다.  프러시아군이 사도바에서 승리한 후, 카이저와 참모총장 몰트케 및 그 부하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가능한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독일제국의 통일의 날을 위한 장래를 멀리 내다볼 수 있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병사들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거실에 들어가 울었다고 한다.

이렇게, 역사상 승리한 군대의 만행 때문에 후에, 한 국가의 지역정책에 해를 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위의 프러시아의 경우가 그렇고, 만주와 중국에서의 일본군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후반 동유럽에서의 소련군의 만행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이것은 비단 승리한 군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주한미군 성폭행 관련 보도는 한국에서의 미국의 이미지에 해를 가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물만 흐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도 악화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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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eokbusin 2011/10/19 09:47 # 답글

    1. 의외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마무리하는 조약은 비스마르크의 주장대로 해결되었습니다. 사도바에서 프로이센군이 이기긴 했습니다만, 왕세자가 지휘하는 야전군을 뺀 나머지들이 보여준 전투기동이 굼뜬 탓에 정작 오스트리아군 주력은 무사히 포위환을 탈출했지요.

    그리고 아직까지도 프로이센방면 오스트리아 야전군이 패전에도 불구하고 건재한데다, 이탈리아 방면 오스트리아 야전군은 협상직전에 이탈리아군을 궤멸로 몰아넣는 완승을 거두어서 몰트케와 참모본부도 더이상 강경자세를 고집할 수가 없었던 것이 유화적인 강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덤으로 독일연방 아니 프로이센 주도의 관세동맹과 심지어 프로이센 내부에서도 오스트리아를 독일민족의 일부로 여기고 이들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대독일주의는 상당히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치동물인 비스마르크가 군인들 주장대로 오스트리아에게 강경하게 나갈 수만은 없었던 것이지요. 안그랬다간 국내정치에서 자신의 기반이 무너질지도 몰랐으니 말입니다.



    2. 본문에서 인용된 상황은 오히려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구현됩니다.

    4년전의 전쟁에서 야전군과 군단들의 대부분이 보여준 실망스러운 부대기동과 전투지휘를 비판한 몰트케는 전선지휘관들과 그들의 참모부에게 "승리의 기회로 여겨지는 상황이 조성되면 적극적으로 전투하라"고 전훈을 세우고 여기에 걸맞게 군지휘부의 명령계통을 조정합니다. 그리하여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는 여전한 야전군차원의 보급난과 야전기동속도의 기대에 못미치는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규군 야전부대들을 거의 모두 포위환에 몰아넣고 궤멸시키는 성과를 올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때문에 비스마르크로서도 완승에 힘입어 강경한 평화조약체결을 외치는 국내 대부분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서 결국 프랑스에게 가혹한 조건의 강화을 관철시키게 되었습니다.


    3. 그렇다고 해서 비스마르크와 몰트케가 전쟁방침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두 사람은 전쟁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에 대해서 전쟁전부터 여러번의 토의를 거쳐서 전쟁지도방침을 만들었지요. 오히려 몰트케는 프랑스황제가 직접 야전군을 인솔하고 전선으로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스마르크와 함께 난감해 했다고 전해집니다-협상할 상대가 없어졌다고요.

    그리고 황제가 포로가 된 것을 알자마자 바로 공화국을 선포한 프랑스의회는 패잔병과 추가징병을 통해 마련한 군대로 독일군을 전선과 점령지 후방에서 괴롭혔는데, 이는 비스마르크는 물론이고 몰트케도 제일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덤으로 비스마르크와 몰트케가 충돌을 일으킨 부분은 바로 이 시점부터였습니다. 비스마르크로서는 군대의 작전이 원래 설정한 정치적 목표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서였고, 몰트케는 비스마르크의 간여가 군대의 전투효율을 깎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었지요.
  • 파리13구 2011/10/19 09:56 #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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