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 일본군의 월권과 이토 히로부미" 유럽외교사

일본 제국주의의 역사에서, 만주문제는 만주사변,만주국,국제연맹 탈퇴,영국 및 미국과의 갈등,일본의 국제적 고립,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전쟁으로 귀결되면서, 일본패망의 불씨가 된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는 만주에서의 일본군의 월권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문제는 일본의 만주침략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초대 조선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영국의 맥도널드 대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지금 영국,미국 두 나라의 무역 당사자가 문제시하는 것은 만주의 일본군으로 인해 무역 활동이 방해받고 있다는 점이다. 만주의 문호는 러시아군의 수중에 있을 때보다 훨씬 엄격하게 폐쇄되고 있다. 더구나 그 폐쇄주의는 서구인에게만 적용되며, 일본인에 대해서는 개방주의를 취한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은 러시아와의 전쟁 당시 일본을 동정해 군비를 공급한 국가를 경시하는 자살적 정략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원래 일본을 동정한 이유는 일본이 문호 개방주의를 채택하고, 그 주의를 관철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군은, 러시아가 곧 복수에 나설 것이므로 지금부터 이에 대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의 방식으로는 일본은 동정을 잃게된다. 만약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일본의 정치가 이렇게도 자명한 이해 관계를 보지 못할 까닭이 없다. 이런 정책은 거의 광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맥도널드 주일 영국대사


1906년 3월 31일


영국대사의 항의는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에 돌입했을 때,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의 만주 독점을 막기위해 일본을 지원했는데, 이제 일본이 만주에 대한 문호폐쇄를 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었다. 이렇게, 맥도널드가 작성한 "만주 현지의 일본군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는 경고 서한을 받은 이토가 이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는 4월 21일 만주를 떠나, 30일 일본에 도착, 5월 22일 총리관저에서 <만주문제에 관한 협의회>를 열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만주에서 일본군의 월권으로 인해, 러시아,서양,중국의 불신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내가 군사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주제넘는 간섭이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만약 북청사변 같은 일이 발생하면, 러시아는 북만주의 군사를 중국에 보내려 할 것이다. 이를 일본이 인정할 수 없다면, 일본은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청국의 평화 유지와 만주에서 영국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외무성 자료를 토대로 나름의 만주정책을 작성해 봤다. 일본군은 군성서를 설치해 군정관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들이 러시아로부터 얻은 권리 이상으로 무리한 행위를 함으로써 청국 관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 판단으로 군정서는 폐지되어야 한다. 지방행정은 청국 관헌에게 일임해야 한다.


내 뜻을 명백하게 하기 위해서 직언하고 싶은 사안이 있다. 군사 당국의 뜻과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이 말은 해야겠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믿는다.


군은 아직 전시라며 현지에서 조세를 징수하고 있다고 한다. 외국은 일본이 일본의 화물에는 무관세로 하고, 외국상품에만 관세를 매기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외무성도 외국에 답변하기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다.


가까운 장래에 전쟁이 재발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최소한 영국과 미국은 만족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본이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나의 개인적 제안을 심의해 내각회의에서 결정할 것을 절실히 바란다."


이같은 이토의 발언은 만주에서 일본군의 월권으로, 영국과 미국을 화나게 만들면, 이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이토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내가 보기에 참모총장 등은 만주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근본적으로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만주에서의 일본의 권리는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러시아로부터 양도된 것에 국한된다. '만주 경영'이라는 표현이 들리는데, 이는 전쟁 당시 일본에서 생겨나 관리와 상인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만주는 결코 일본의 속지가 아니다. 엄연한 청국 영토이다. 그런 곳에서 일본의 주권을 행사할 근거가 없다.


고다마가 말하는 척식성 같은 것을 신설할 필요도 없다. 그런 업무를 취급할 필요도 없다. 만주 행정은 청국정부에 맡겨야 한다."


결국 당시 이토는 "만주는 청의 영토이며, 일본이 주권을 행사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토의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만주에서 일본군의 월권문제는 계속되었고, 이것이 이후 일본을 패망시키는 태평양전쟁의 불씨가 될 것이었다.




덧글

  • 빼뽀네 2011/10/13 18:37 # 답글

    이토 히로부미는 점진적인 제국주의자였던 것 같군요.
  • 파리13구 2011/10/13 18:38 #

    네, 신중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 김창식 2011/10/13 19:39 # 삭제 답글

    으아아.....미래를 뻔히 내다보고도 제발로 재앙을 맞아들이다니 사람이라는 것이 저리 아둔할 수 있는지요.
  • 김ㅇㅇ 2011/10/14 08:17 # 삭제 답글

    이토의 식견이나 활동을 보면, 확실히 안중근의 총알이 일본제국의 멸망의 단초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토가 살아있었더라도 저렇게 막나가는 미친 군부를 컨트롤 할 수 있었을지는 의심스럽긴 하지만요...
  • 파리13구 2011/10/14 08:24 #

    이토가 군부를 견제할 수는 있었지만, 통제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봅니다...
  • 재팔 2011/10/14 16:36 # 답글

    그나마 다행인 게 저때 고다마 겐타로의 급사였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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