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와 삼국간섭" 유럽외교사

사전에 따르면, 삼국 간섭 Tripartite Intervention or Triple Intervention 三国干渉 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 제국이 요동 반도를 점령하자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프랑스 공화국이 일본 제국의 철수를 요구하여 관철한 사건이다.


청일전쟁의 결과에 대해, 전쟁이전 상황의 회복을 원했던 러시아는 프랑스,독일,영국에 공동행동을 요청했다. 러시아와 동맹 관계에 있던 프랑스는 즉시 러시아를 지지하였고 러시아-프랑스 동맹의 약화를 원하던 독일도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하였다. 한편,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데 일본이 유용할 것이란 점 때문에 간섭에 반대했다.


삼국간섭에 대한 일본의 입장을 결정하는 어전회의는 1895년 4월 24일에 열렸다. 이 회의에서 이토 히로부미 총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고 한다.


"첫째, 이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와의 전쟁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현재 그들의 막강한 함대에 대해사 어떠한 방책을 세워야 할 것인가.


둘째, 요동반도의 점령을 포기하는 경우는 조약을 열국회의에 제출하여 결정해야 한다. 이 경우, 어떤 회의를 어디에서 열 것인가 하는 문제는 3국공사와 담판하여 정해야 한다. 다만 회의를 열때, 영국을 여기에 참가시켜야 한다. 청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할지는 좀더 고민해봐야 한다.


하지만, 설령, 회의를 연다고 해도, 그것은 청국과의 강화조약을 비준,교환한 이후가 좋다. 그러나 회의 개최를 비준,교환 이후로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기대할 수 없다. 이것은 요동반도의 주권이 이미 일본에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동 철수에 따른 보상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을 청국정부가 완전하게 이행할 때까지, 담보로 점령해야 한다.


셋째, 3국의 권고를 받아들여, 일본이 은혜를 베풀어 청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다른 조건들을 완전하게 실행한 후에 요동반도를 돌려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토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3국이 강경한 태도를 가지고 이를 요구하는 이상, 반드시 중대한 결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일본이 지친 군대를 이끌고 새로이 3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원래 불가능한 일이다. 일이 이쯤되면 어떻게 해볼 방도가 없으므로 재빨리 이를 수락해야 한다."


무쓰 무네미쓰 陸奥 宗光 Mutsu Munemitsu, 당시 일본 외무장관의 지적 처럼, 지나친 교만에 차 있던 일본 국민들은 그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굴욕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정부는 엄청난 눈물을 머금고 요동반도를 청국에 반환하게 되었다.


'앞문의 여우'를 쫓아낸 일본은 '뒷문의 호랑이'와 조우했던 것이었다.


결국 삼국간섭이란, 이토 히로부미가 전쟁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무력간섭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었다 : "이때 단지 군사 하나만을 일로 삼지 않고, 때를 보아 나아가고, 그만 둠에 있어서 국가가 위험한 처지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시종 외교관계를 신중히 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일에 속한다." 




덧글

  • 라라 2011/10/10 18:57 # 답글

    결국 삼국간섭이란, 이토 히로부미가 전쟁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의 무력간섭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었다 : "이때 단지 군사 하나만을 일로 삼지 않고, 때를 보아 나아가고, 그만 둠에 있어서 국가가 위험한 처지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시종 외교관계를 신중히 하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일에 속한다."


    솔직히 대단하다고 할수밖에 없군요.

    이자가 살아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거란 말이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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