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독일 그리고 장개석..." 유럽외교사

중일전쟁과 독일...

다음은 레이 황의 지적이다.


일본을 일찌감치 평화공세를 시작했다. 1937년 10월 21일, 일본은 도쿄 주재 일본대사 폰 디르크센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중재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11월 2일, 6개 항목의 제안이 디르크센에게 전달되었다. 여기에는 내몽골의 자치, 북부 중국의 비무장화, 상하이 인근 휴전지대의 확대, 반일활동의 중지, 반공 활동을 위한 상호합의 그리고 일본상품에 대한 관세인하 등이 포함되었다.


이런 조건은 중국 주재 독일 대사 트라우트만을 통해 11월 5일, 장제스에게 전달되었다.


11월 29일, 난징에 있던 장제스는 쿵샹시로부터 트라우트만이 여전히 중재하기를 원한다는 내용의 전문을 받았다. 장제스는 트라우트만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 날의 일기에 장제스는 "적의 행동을 지연시키기 위해,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고 적었다. (1937년 11월 29일)


12월 2일, 장제스는 트라우트만을 만났다. 장제스의 태도는 진지했고, 중국측 기록에 따르면, 만약 히틀러가 직접 장제스를 지원해준다면, 장제스가 독일의 중재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은 공동의 적인 소련을 상대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동맹국 일본이 중국에서 장기전을 벌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 날 장제스는 대사에게, 북부 중국의 영토 보전과 주권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고 한다.


12월 4일, 독일 대사로부터 아무런 말이 없자, 장제스는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에게 굴복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일본은 독일 대사의 평화제안을 폐기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1937년 12월 6일)


하지만 일본은 아직 평화제안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건을 강화했다. 본래 일본은 국지전을 준비했었다. 일본군은 북부 전선에서는 바오딩에, 중부전선에서는 쑤저우-자싱 방어선에서 멈추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자의 제한은 현지 야전 사령관들이 무시해버렸고, 후자의 제한 또한 참모본부가 직접 폐기해 버렸다.


12월 1일, 일본 참모본부는 난징을 향해 진격할 것을 인가했다. 그리고 북부 중국의 현상유지 원칙이라는 장제스의 대응 제안을 독일이 일본에 전달했을 무렵, 일본군은 중국 영토 깊숙이까지 침투해 있었다. 이에 도쿄는 중국에 더 가혹한 조건을 내걸어도 된다고 판단했다.


12월 22일, 일본 외무장관 히로다 고키는 독일 대사 폰 티르크센에게 세가지 추가조건을 알려주었다 : 만주에 대한 공식적인 승인, 모든 일본 점령지역의 비무장화 그리고 중국의 전쟁 배상금 지급 이었다.


1938년 1월 2일, 독일대사 트라우트만은 중국의 외교부장 왕충후이에게 이 정보를 건넸다. 장제스는 일기에 그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일본이 내세운 조건은 한 국가로서 우리나라를 절멸시키는 것과 다름없다. 굴복해서 멸망하느니, 차라리 전쟁을 벌이다 패배해서 멸망하는 편이 낫겠다." (1938년 1월 2일)


그 후 일본은 몇차례 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장제스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싸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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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일전쟁,독일 그리고 장개석…" | Freedom Developers 2011-09-30 15:0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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