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석이 삼국동맹에 환호한 이유는?" ^ ^ 유럽외교사

기록에 따르면 1940년 9월 27일, 삼국동맹이 체결되는 날, 중국의 장개석은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고 한다 :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상의 사건이 발생했다. 항일전쟁의 승리를 위한 방향이 결정되었다."


일본이 1940년 9월 27일, 히틀러,무솔리니와 삼국동맹 조약을 체결하자, 중국의 장개석은 휘하의 장군들에게 이번의 이른바 주축국 조약은 그가 1934년이래 예견해왔던 상황을 만들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즉 일본을 남방진출로 몰아가게 만드는 것! 일본의 남진은 필연적으로 일본군이 영국 및 프랑스 뿐만아니라 미국과도 충돌하게 만들것이 분명했다. 당시 일본군은 이미 북베트남 국경을 돌파한 상황이었다.(9월 22일) 장개석의 시각에서, 도쿄가 히틀러와 무솔리니 그리고 간접적으로 소련편에 가담하는 것은 태평양에서 강력한 적들을 만들 뿐이고, 이들 일본의 적은 중국의 자연적 동맹이 된다고 보았다고 한다. 즉, 독일도 이탈리아도 중국의 더 이상의 피해를 줄 수는 없는 반면, 일본은 영국과 미국을 추가로 적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가 하타 이쿠히코에 따르면,태평양전쟁이 하나의 가능성에서 기정사실이 된 것은 삼국 동맹 결성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개전과정에서 삼국동맹 결성이란, 일본이 루비콘 강을 건넌 것에 다름아닌 치명적인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태평양전쟁 발발이라는 주사위가 던져 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치라는 악마와 악수하면서, 일본은 명백하게 미국의 적이 되었다. 뿐만아니라, 당시에 붕괴직전에 있었던 중국은, 이같은 국제적 분위기를 읽었고, 일본에 대한 항전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결의를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

1. THE CAMBRIDGE HISTORY OF JAPAN,  Volume 6 The Twentieth Century 
2. HATA IKUHIKO, The Road to the Pacific War
3. Jay Taylor, The generalissimo: Chiang Kai-shek and the struggle for modern China




덧글

  • Real 2011/09/24 00:11 # 답글

    결국 자기가 일본 못물리칠것 같다는거 아니까 그런거 아니겠어요?ㅋㅋ
  • 니혼진 2011/09/24 00:12 # 삭제

    그때 조센징은 어디서 뭐하고 있었나요?

    잠깐 아마 그때 조선이란 나라가 있었던가?
  • Real 2011/09/24 00:14 #

    비로그인 하나가 파리13구님 링크를 걸고 이런 쇼를 이야기하네요.
  • 00 2011/09/24 00:11 # 삭제 답글

    환호해 봤자지
  • 지나가던과객 2011/09/24 09:14 # 삭제 답글

    하지만 모택동에게 섬으로 쫓겨난 걸 생각하면....
  • 뭐라는건지.. 2011/11/11 08:36 # 삭제 답글

    장개석 군부는 이미 썩을때로 썩었기 때문에.. 군사력으로도 월등했어도 결국 모택동에게 쫒겨 미군의 보호아래 대만으로 도망갔죠.. 국공(국민당,공산당)합작으로 항일전쟁을 하자고 협으후에 .. 일본군을 공격하는 공산군을 뒤에서 공격했던 사건도 많습니다.
    중국 인민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여기서도 알수있듯이 "민심은 천심" 입니다. 장개석이 조금만 더 민심을 알았다면.. 지금의 중국또한 달라졌을겁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