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임벌린의 유화론과 루스벨트의 강경론의 역설?" 유럽외교사

전간기, 파시즘을 견제하기 위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외교방침은 어떤 것이 되어야 타당했을까?

역설적이지만, 뮌헨회담에서의 체임벌린의 대독 유화론과 진주만기습 직전의 루스벨트의 대일 강경론 모두 전쟁을 막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조지 캐넌이 냉전정책 구상에서 지적했던 것과 유사하게, 파시즘 독일과 일본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서방측의 유화 혹은 강경책과는 전혀 관계없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독일과 일본의 태도는 전체주의 체제 내부의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었고, 서방측이 어떠한 입장을 취해도, 그 체제의 비타협성에는 변화가 없었을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즉 냉전시기의 소련이 외부세계를 적대적으로 취급해야 했던 것이, 국외적 위기가 독재와 정치적 탄압 그리고 국민에 대한 희생 강요를 위한 빌미를 제공해주고, 안정적인 국내 통치를 위한 수단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라면, 전쟁 전후 독일과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외부세계의 적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국내의 안정을 위해, 국외의 불안을 이용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라면, 전간기 미국과 영국의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유화책이냐 강경책이냐의 여부가 아니라,
조지 캐넌이 소련에 대해 주장했던 것처럼, "장기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그러나 확고하고 빈틈없이" 파시즘의 "팽창욕을 봉쇄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행하게도, 전간기 미국과 영국의 대외정책은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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