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캐넌, 비스마르크적 유럽 질서의 붕괴... 유럽외교사

비스마르크의 프랑스정책...


이리에 아키라는 <20세기의 전쟁과 평화> 중 제2장 세계대전에 이르는 길에서
케넌의 <비스마르크적 유럽 질서의 붕괴>를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보불전쟁,1870-1871)에 의해 서유럽 지도가 다시 그려져, 통일 독일 제국이 출현했고, 1914년의 제1차세계대전까지 유럽에는 대규모 전쟁이 없었다. 조지 케넌은 이 40년 동안의 안정과 평화의 기초를 다졌던 것이 바로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 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비스마르크 주도하에 구축된 이른바 <비스마르크의 국제질서>가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야말로, 세계대전으로 이르는 길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불전쟁 이후 유럽에서는 5대국이 군림하고 있었고, 5대국이란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러시아였다.

비스마르크는 보불전쟁 이후 유럽은 독일에게는 대체로 바람직한 상태였고, 이 이상 전쟁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평화가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보불전쟁의 패전 이후 영토를 상실한 프랑스에 대해서도 보복전쟁 대신에 새로운 유럽의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가지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맹을 맺는 동시에, 러시아와도 협조하고, 영국과도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여 노력했다. 이는 프랑스가 5대국 중 다른 한두 나라와 연합하여 현상타파를 시도하는 것을 막는다는 것이었다. 즉 5개국 중 독일을 포함한 적어도 세나라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 현상유지 지향의 체제를 구축, 평화를 유지시킨다는 복안이었다.

이같은 비스마르크적 유럽 질서는 비교적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적어도 1914년까지 40년동안 5대국들간의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스마르크의 구상이 계속된 것은 1889년까지이고, 그 이후 유럽의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5대국간의 관계에 큰 변화가 나타난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두나라에 대해 러시아,프랑스,영국이 3국협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비스마르크가 가장 위험한 상황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이는 세나라 중 적어도 한 나라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측에 놓으려했던 구도가 파탄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덧글

  • 파파라치 2012/10/23 10:14 # 답글

    러시아와 프랑스의 접근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긴 했지만, 영국을 적으로 돌린 것은 정말 큰 실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독일 지도자들이 국경을 접하지 않은 영국과의 관계 악화에 대해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죠. 심지어 쉴리펜 계획에서는 영국의 개입가능성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파리13구 2012/10/23 10:22 #

    쉴리펜이 독일 육군적 정신을 대표한다면, 단기에 전쟁을 끝낸다는 전략의 관점에서, 당시 영국 육군은 무시해도 무방할 정도였다는 것이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해군에 비한다면, 영국 육군이야...ㅠㅠ
  • 파파라치 2012/10/23 10:27 #

    근데 현실은 단기전에서조차 영국의 개입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었지요. 개전 초기에 소수의 대륙원정군이 독일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큰 역할을 했었으니까요. 하물며 장기전에 돌입한 후에는...
  • 파리13구 2012/10/23 10:35 #

    네, 독일의 입장에서, 보불전쟁 당시와 같이, 독불전쟁에 대한 영국의 불개입을 관철시켜야 했는데,

    슐리펜 계획은 독일군의 벨기에 통과를 기정사실로 했기 때문에,

    벨기에 중립을 유럽정책의 기본으로 하는 영국외교의 입장에서는 개입이 불가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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