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의 제1차세계대전 (2) 유럽외교사

동아시아에서의 제1차세계대전 (1)

일본은 1914년 8월, 영국과 자신의 동맹에 의거,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고, 중국이 산동반도에 있는 독일의 교주만 조차지를 공격하면서, 제1차세계대전에 개입했다. 1915년 1월, 일본은 중국에게 21개조 요구안을 강요하면서, 중국에서의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으려 시도했고, 교주만을 일본에게 넘기고, 만주와 양자강 유역 그리고 복건성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양보들을 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측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영국과 미국의 압력 때문에, 일본은 그 목표들 중 일부만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같은 반대에 직면, 일본은 1916-1918년에 새로운 전략을 채택, 중국에 차관 형식으로 새로운 자금력을 행사, 강압을 통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차지하려 했다.


중국에서의 일본의 행동들과 유럽이 지배하고 있는 인도와 동남아 시장으로의 일본의 상업적 침투는 영불양국의 호의를 받지 못했고, 특히 일본의 동맹국 영국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이 계속되고, 특히 지중해에서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해군력 지원이 필요했던 만큼, 도쿄를 억제시키기 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영국을 화나게 만들면서 동시에, 일본은 또한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미국의 윌슨 정부에게, 일본의 중국정책은 문호개방 원칙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었다. 더 나아가, 해군력 경쟁도 있었고, 일본은 1916년에 공표된, 미해군의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에 맞서, 이에 부합하는 대응을 하려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1918년 7월의 시베리아의 질서회복을 위해 개입하기로 한 결정은 표면적으로 양국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실제로는 또하나의 경쟁이었고, 각기 상대방이 지역의 경제자원을 독점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했다.


1919년의 파리 평화회담도 이같은 긴장의 완화에 약간의 도움만 되었을 뿐이다. 일본은 3개의 주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 첫째, 교주만 조차지의 통제권을 공인받는 것 ; 둘째, 서태평양의 독일 군도를 확보하는 것 ; 셋째, 국제연맹 헌장에 인종차별 반대 조항을 추가하는 것. 이를 통해 일본은 제국의 확장을 추진했고, 다른 열강과의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기를 원했다. 일본의 이같은 노력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다. 미국은 초반부터 교주만을 일본에 양도하는 것에 반대했고, 일본이 결국 그것을 중국에 반환하겠다는 의도를 밝힌 후에야 화를 멈추었다. 한편, 인종평등 조항은 자신의 이민정책을 수정하기를 거부했던, 호주의 완강한 반대에 직면, 물거품이 되었고, 일본은 독일의 과거 태평양 군도에 대한 완전한 소유가 아닌,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방식으로 획득했다. 따라서 일본은 단지 절반의 만족만을 느끼면서 회담장을 떠났고,한편 미국과 영국은 일본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덧글

  • 행인1 2011/09/16 22:41 # 답글

    1. 영-미와 일본의 불화가 이렇게 시작되는군요.

    2. 일본의 차관은 북경의 군벌정부(남방의 국민정부와 대립)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차관이외에도 장작림등의 군벌과 관계를 맺는 등의 투자(?)도 하죠.
  • 파리13구 2011/09/17 09:12 #

    2. 이이제이 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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