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일본의 천황제... 유럽외교사

허버트 빅스가 인용한 야스마루 요시오의 한 연구에 따르면,

1930년대 육군 병사들이 가장 많이 징집되던 농촌에서, 문부성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지방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정부의 선전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방 주민들에게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독자적인 지역 문화보다 의미나 가치가 없었다. 가족이나 마을에 대한 귀속감이 여전히 국가의식보다 우선이었다. 사실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중반까지도 많은 주민들은 천황의 권위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육군은 병사의 뿌리는 무엇보다 그들의 가족과 마을이라는 전제에 따라 움직였다. 가령 1941년의 전진훈(일본군에게 주입된 군인칙유)는 다음을 주장하고 있다 : "수치를 아는 자는 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언제나 가문과 고향의 체면을 기억하고, 살아서 포로의 수치를 당하느니 죽어서 오명을 남기지 말라."

다만, 천황제의 권위가 도외시되었던 지방에서도 책임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예외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촌장이나 교사,경찰관,승려,신관 같은 일본 국가주의의 보병들은 지역사회에서 스스로의 권위를 다지고자 천황의 권위와 국가 권력을 내세웠다. 천황을 숭상하는 그들의 충성은 종종 자발적이고 절실해 보였다. 그러나 촌민 대부분은 공적으로 책임있는 지위에 있지 않았으며, 대개는 천황을 마음 깊이 믿지도 않았다. 그들의 애국심은 다른 질서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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