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과 영국,미국의 대응... 유럽외교사

다음은
Richard Overy, Andrew Wheatcroft, The Road to War: The Origins of World War II 의 관련글을 번역한 것이다.

만주사변은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위치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1931년까지, 일본은 국제협력 체제의 충성스럽지만 후진적인 일원으로 간주되었다. 1931년 이후, 일본의 국제적 위치에 대한 두가지 독특한 해석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몇몇 서양인들에게, 문제는 명확했다 : 일본은 만주에서 무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일본은 말썽 국가이고, 국제연맹에 공공연하게 도전한 첫번째 국가라는 것이었다 ; 이에 대한 서양의 적절한 대응은 추방 혹은 몇가지 처벌이라는 것이었다. 강한 강경론자들은 미국 국무부의 극동문제 전문가들이었지만, 그들의 정책 제안은 자주 워싱턴의 외면을 받았다. 온건론 지지자들이 더 많았고, 그들은 일본의 군사적 해상적 모험주의가 단지 일시적인 것이라 보았다. 만약 일본이 국제체제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본다면, 군국주의적 동기는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같은 미묘한 대응을 가장 강하게 촉구한 서양 인사들로는 도쿄주재 미국대사 조셉 그루 Joseph Grew 와 영국대사 프랜시스 린들리 경 Sir Francis Lindley 이 있었다. 


극동에서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같은 국가의 정부들 뿐만아니라, 영국과 미국 정부들에게, 문제가 복잡했다. 경제적 전략적 고민이 있었다. 영국과 미국은 중국과 일본에 많은 투자를 했다 ; 미국의 30만개의 일자리가 일본과의 비단무역에 의존하고 있었고, 1930년, 영국의 대일수출은 중국과의 무역에 필적했다. 영국과 미국시장에서 일본상품이 맥을 못추게 만들었던, 관세법이 일본인을 격분시켰다. 특히 1930년 6월에 통과된 스무트 홀리 관세법 the Smoot Hawley Tariff Act 이 그랬다. 서양정부들은 만주에서의 무모한 행동으로 보복을 초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윤리적 문제도 복잡했다. 영미 정부는 일본이 만주지역을 경제적 후진상태에서 상대적 번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인정했다.중국 통치하의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도적떼가 날뛰는 지역과의 직접 비교는 일본의 지역에서의 공헌을 입증했다. 미국 국무부의 스탠리 호른벡 Stanley Hornbeck 은 상황의 모호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만약 중국이 이긴다면, 중국은 말썽꾸러기 역할을 계속할 것이다 ; 만약 일본이 이긴다면, 일본은 스스로 극동에서의 국제적 권리의 조정자임을 자임하는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만약 일본이 이긴다면, 무력의 행사 없이 국제적 갈등을 해결한다는 원칙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영국 외무장관 존 사이먼 경 Sir John Simon 이 캠브리지의 피터하우스 학장으로 있는 옛친구로부터 받은 편지는 일본의 적대적 행동에 대한 서양의 태도의 심각한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다음과 같은 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아마도 비도덕적이다. 일본이 국제연맹을 유린하고 있지만, (1)일본은 위대한 도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2) 일본은 어딘가로 반드시 팽창해야 하고, 아무쪼록 호주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일본이 그곳에서 팽창하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것 (3) 만주에서 명확하게 확립된 일본이라는 존재가 볼셰비키 팽창에 대한 진정한 방패가 된다는 주장 등이 그렇다."


1932년 1월 일본이 상해 주변의 중국군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확대되자, 이 도시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의 공포속에서, 영국과 미국의 태도가 강경화되었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 합동작전의 전망은 실제로 거의 없었다. 영국 총리는 "당신은 워싱턴으로부터 말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거창한 말이지만, 단지 말뿐이다." 미국의 국무장관 헨리 스팀슨 Henry Stimson 은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나는 우리가 영국이 우리와 합류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차라리 회의적이다' 실제로, 극동에서 영국과 미국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는 자주 일치하기도 했지만, 달랐다. 극동, 특히 중국에서 미국 기업 이익의 확대는, 영국 외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주로 영국을 희생해서" 달성된 것이었다. 반대로, 일본은 점점 영국에게 중요한 시장이 되고 있었고, 런던 금융가는 일본산업에 대규모 자금투자를 했다. 영국은 항상 미국정책은 극동에서 미국 기업망의 확장을 위한 것이라 의심했다.


하지만, 양국은 동일한 전략적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즉 일본이 서양 열강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을 지라도, 지역의 지배적인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영국군 참모본부의 1932년 연례 전략백서는 솔직했다 : 입장이 매우 열악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극동에서 단지 경량급 해군전력만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극동으로 주력함대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연료 보급이 필요하고, 도착 이후에도 함대의 이동이 위험하다 ; 도착한 함대의 운영에 필수적인 싱가폴과 홍콩의 기지들은 방어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진주만에 태평양 기지가 있는 미국은 중국의 현장에서 4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 심지어 미국의 전진기지가 있는 필리핀도 상해에서 1000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예산삭감이 영국함대를 약화시켰고, 경제불황의 여파가 미국의 군비지출을 잠식시키고 있었다. 심지어, 수적으로 봐도, 미국은 근소한 우위에 있었다. 일본은 2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었고, 미국은 4척을 가지고 있었고, 일본은 만주위기 동안 다른 항모들 제작에 들어갔다. 극동의 상황에서 주력인 중순양함에서, 일본은 수적,질적인 우세를 가지고 있었다. 1934년, 일본은 해군력에 관한 워싱턴조약에서 탈퇴했다.


사실상, 서양열강에게 실제로 가능한 선택사항은 제한적이었다 : 그들은 일본의 팽창을 묵인할 수도 있었다 ; 혹은 그들은 경제제제를 부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 자신들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 혹은 그들은 일본과 전쟁을 하는 대신에, 중국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해 줄 수도 있었다.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그들은 최소한의 행동만을 담당하고,국제연맹의 행보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향후 10년동안,그들은 이상의 선택사항들 중 모든 가능한 조합들을 시도해 보게 된다. 하지만, 1931년에 불가능했던 선택은 바로 군사개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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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萬古獨龍 2011/09/08 18:40 # 답글

    제국주의적 관점에 따른 열강의 갈등이 여실히 드러나는군요.
  • 파리13구 2011/09/08 18:44 #

    네, 그렇습니다.
  • 역성혁명 2011/09/08 22:25 # 답글

    서로 얽히고 섫히는 실타래가 국익이죠
  • 파리13구 2011/09/09 06:56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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