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협정 1936년 11월 25일 the Anti-Comintern Pact 유럽외교사

방공협정 1936년 11월 25일

World War II: A Student Encyclopedia (5 volume set) ABC-CLIO (February 23, 2005)  관련항목 번역.

<방공협정에 서명 중인 독일주재 일본대사 무샤코지 긴토모 와 독일외무장관 요하힘 폰 리벤트로프 >


독일과 일본간의 형식적 동맹. 1936년 11월 25일 베를린에서 체결된, 방공협정 (the Anti-Comintern Pact,반코민테른 협정)은 표면상으로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 즉 세계 사회주의 운동을 지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련 기관에 대한 대응이었다. 명목상, 국제 공산주의의 존재와 확산에 반대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 협정은 실제로 다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획된 외교적 도구였다.


독일 특사,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는 1935년에 처음으로 이 협정을 제안했지만, 독일 외무부와 군이 이를 반대했다. 제1차세계대전 이래, 독일이 중국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왔다. 당시 일본과 중국이 일본의 만주 장악 문제로 갈등상황에 있었던 만큼,이같은 협정은 그동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돌프 히틀러의 승인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히틀러는 협정이 영국에 압력으로 작용하기를 원했고, 이를 통해 영국이 독일의 군비증강과 동유럽으로의 팽창이라는 자신의 계획에 간섭하지 않기를 바랬다. 아무튼, 영국지도자들은 극동에서의 영국의 이익에 대한 일본의 위협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리벤트로프 와 일본 연락장교인 히로시 오시마 소장 Hiroshi ∫shima 의 협상에 기초했던, 방공협정은 일본을 독일에 속박시키려는 히틀러의 노력이었다. 한편, 일본 지도자들은 이를 점차 적대적으로 돌변하는 세계에서 동맹을 찾아가는데 중요한 일보라 보았다. 만주점령 이후 서양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일본은 극동에서 소련과 무력충돌 중이었다.  일본은 독일과의 협정이 소련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킬 것이라 희망했다. 따라서, 협정 문구는 독일보다는 일본에게 더 중요했다.


같은 날, 독일과 일본은 또 하나의 협정에 서명했다. 이에 따르면, 만약 소련이 정당한 이유없이 독일 혹은 일본을 공격한다면, 양국은 자신들의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고, 어떤 경우든, 그들은 소련에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합의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양국 모두 소련과 어떠한 정치조약도 체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독일은 또한 일본의 꼭두각시 체제인 만주국을 승인했다.


이후 독일은 방공협정을 하위 동맹국들의 충성도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이용했다. 이탈리아는 1937년 11월 6일에 협정을 조인했다. 협정은 1941년, 11개국을 조인국으로 더 참여시키면서, 갱신되었다.


많은 관찰자들에게, 방공협정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의 독일의 재등장을 상징했다. 독일과 일본간의 세계적 협력이라는 위협은 프랑스와 영국의 드넓은 제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협정은 현실보다는 환상이었다. 양조인국은 협력하는데 실패했고, 자신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거의 알리지도 않았다. 1939년 8월, 히틀러가 독소불가침조약에 서명했을때, 이는 방공협정 위반이었고, 이보다 방공협정의 무가치함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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