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항복과 일본 -1940년 6월... 유럽외교사



1940년 6월의 프랑스 항복은 일본에게 충격과 흥분을 제공했다.

6년 이상 걸릴 것이라 전망된 전쟁이 6주만에 끝난 것으로 보였고, 유럽에서의 독일의 승리가 임박한 것으로 보였다. 일본지도자들은 영국에 대한 독일의 승리도 임박한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이같은 상황의 급변을 동남아시아에서의 자신의 이익으로 전환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다.

독일-프랑스 휴전협정 체결(1940년 6월 22일) 직후인 6월 25일, 일본의 육군장관은 자신의 참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황금과 같은 기회를 잡자! 그 어떠한 걸림돌도 치워버리자!"

당시 일본육군은 이같은 상황변화를 <남방진출>을 위한 호기로 삼았다. 7월 3일, 육군장관과 그 참모본부가 <변화하는 세계정세에 부응하는 원칙들에 관한 개요>라는 제목을 문서를 만든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이 문서는 당시 육군정책의 방향을 결정한 것으로, 이것이 결국 정부정책이 되었고, 1941년 12월의 태평양전쟁의 개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국가정책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문서는 우선, 가장 먼저 <중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이는 남방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데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문서는 중국에서 전쟁이 끝나지 않아도, 남방진출이 진행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중국 문제가 어떤 식으로 해결되든지, 8월말의 목표일까지는 전쟁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외교정책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와의 일본의 유대가 강화되어야 하고, 2개의 전선에서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소련과의 관계도 조속하게 개선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장개석에 대한 지원 보급로를 차단해야 한다는 점과 네덜란드령 동인도 회사의 자원은 일본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외교로 실패한다면, 이를 무력으로 장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문서의 결론부에서는 다음과 같은 호전성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적당한 시기에 남쪽으로 군사작전을 진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홍콩 과 말레이 반도를 공격할 것이고, 가능하다면 작전은 영국에 대항해서만 진행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전쟁은 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서를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다. '결국 상황이 호락하는한 미국에 대한 무력행사가 유보될 것이라 기대하며, 일본은 필요한 군사적 대비를 할 것이다.'

<개요>는 다음날 해군 대표들에게 소개되었다. 육군 관계자는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기 전에, 지체없이 행동에 나서야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이전에, 일본은 자급자족적 경제권을 만들어, 영국 과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만 하고, 그 경제권이란 일본,만주,중국을 핵심으로 하지만, 그 영역은 인도양에서 남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북쪽 바다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지금과 같은 기회는 결코 없었다. 우리의 국력신장을 위한 계획이 매우 시급하다... 우리는 현재 같은 호기를 잡아야만 하다."고 육군측이 강조했다. 낭비할 시간이 없고, 일본은 자신의 황금같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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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eal 2011/09/05 20:32 # 답글

    그래서 동남아-진주만 크리->결과는 충공깽->그리고 무조건 항복.

    이렇게된 것이 오늘날의 역사지요.
  • 파리13구 2011/09/05 22: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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