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양해안 Japan–US Draft Agreement -1941년 4월 16일 유럽외교사


미일양해안 Japan–US Draft Agreement


1941년 4월 16일 목요일,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가 미국 국무장관 헐과 만났다. 헐은 노무라로부터 일본과 미국간의 비공식접촉을 통해 작성된, <미일양해안>을 받았다. 헐은 일본정부에게 공식 협의를 시작하는데 필요한 절차들을 밝아 줄 것을 요청했다. 노무라 대사는 헐 장관에게 미일양해안을 본국에 통달하겠다고 말했고, 4월 17일 최종안을 일본에 보냈고, 이것이 18일에 일본에 도착했다.


<쇼와사>에 따르면, 이 안을 받아 든 일본정부는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특히 고노에 총리는 대단한 일이라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뿐만아니라 육군대신, 해군대신, 참모총장과 군병부총장도 양해안의 기본적 취지에 동의했다.


하지만, 고노에 총리는 미일양해안에 대한 답변을 미루었다. 당시 마쓰오카 요스케 외무장관이 삼국동맹 체결,소일중립조약을 체결하면서 유럽순방 중이었기 때문에, 총리는 외상이 귀국한 후, 그의 의견을 듣고 난 후, 답장을 보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소설 태평양전쟁>에 따르면, 미일양해안은 다음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1.양국의 국제관 및 국가관
2.유럽 전쟁에 대한 양국의 입장
3.중일전쟁에 대한 양국 정부의 입장
4.태평양에서의 해군 및 공군력과 해운력 문제
5.양국의 통상 및 금융관계
6.남서태평양에서의 양국의 경제활동
7.태평양에서의 정치안정에 관한 양국의 입장


이상의 항목들에 대한 대체적인 양해에 도달하게 된다면, 루스벨트 대통령과 고노에 총리가 태평양 연안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열어, 양국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1941년 3월 11일 무기대여법의 통과로 미국이 유럽전쟁에의 개입을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이 3국동맹에서 이탈하거나 혹은 그것을 무력화시키고, 더 나아가 미국의 참전에 협력하게 만들고자 했다.


한편,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제일 중요한 것은 제3조, 즉 중일전쟁에 관한 것이었다. 제3조는 세부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다.


미국대통령이 아래 조건을 용인하고, 또한 일본 정부가 이를 보장했을 때, 미국 대통령은 이에 따라 중국의 장개석에게 다음과 같은 화평을 권유할  것이다.


ㄱ.중국의 독립
ㄴ.중일간에 체결될 협정에 따른, 일본군의 중국으로부터의 철수
ㄷ.중국영토의 비병합
ㄹ.배상금을 요구하지 않음
ㅁ.문호개방의 원칙 부활. 단, 이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추후 미일간에 협의함
ㅂ.장개석 정권과 왕조명 정권의 통합
ㅅ.중국영토에 대한 집단이주 자제
ㅇ.만주국의 승인


일본은 제3조 ㅇ항, 즉 만주국 승인에 대해 안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제6조,제7조의 부속항에서는 다음을 제안하고 있었다.


제6조
-일본의 남서태평양에서의 진출이,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평화적 수단에 의한다는 조건하에, 일본이 바라는 이 지역에서의 자원, 즉 석유,주석,고무,니켈 등 물자의 생산 및 획득에 대해, 미국측의 협력과 지지를 받을 것임


제7조
ㄱ.미일 양국 정부는 유럽 국가들이 장차 동남아시아 및 남태평양에서, 영토의 할양을 받거나 통합 등을 하는 것을 용인하지 아니함.
ㄴ.양국 정부는 필리핀의 독립을 공동으로 보증, 필리핀이 도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3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원조방법을 고민할 것임.
ㄷ.본국 및 남태평양에서의 일본 이민은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고, 타국민과 동등하고 차별없는 대우를 받을 것임.


이상을 요약하자면, 미일양해안에 따르면, 미국은 만주국을 승인하고, 미국은 남서태평양에서 일본이 원하는 물자를 평화적으로 획득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양해안 이전에, 일본은 이미 중일전쟁의 종결 및 중국에서의 철군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4월 22일, 마쓰오카 일본외무장관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 미일양해안은 그의 맹렬한 반대에 부닥쳐 무산되고 말았다. 마쓰오카에 따르면, 양해안은 미국이 전쟁준비를 위해 시간을 벌기위한 것이고, 개전의 구실을 일본에게 넘기도록 하기위한 술책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미일양해안 무산 때문에, 일본은 중일전쟁의 종결과 미일관계 개선이라는 두개의 치명적 현안들을 해결할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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