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에 후미마로,"베르사유 조약에 대해..." 유럽외교사

전시 일본에서 총리를 역임한, 고노에 후미마로는 베르사유 조약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고노에 후미마로는 사이온지 긴모치를 설득, 자신을 1919년 파리 평화회담의 일본대표단에 포함시키게 만들었다. 고노에는 1918년, 베르사유 조약 이전에, <영미 중심의 평화에 반대하며>라는 글을 발표, 큰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글에서, 그는 민주주의와 인도주의의 이상을 옹호하고, 이들 가치들이 일본사회에서도 널리 퍼지기 바란다는 자신의 바람을 피력했다. 하지만, 그는 영국과 미국에 매혹당하고, 윌슨의 14개조 주장을 지지했던, 일본 지도자들을 비판했다. 고노에에 따르면, 이들 국가들은 자신만의 이해관계를 은폐하기 위해 이상주의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영미 지도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평화는 그들의 이해에 맞는 현상유지를 지속해나가려는 것에 다름아니다... 현재의 갈등(제1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본질은 기득권 열강과 비기득권 세력간의 투쟁이다... 초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의 덜 문명화된 지역들을 식민화했고, 그들의 이익을 독점했다. 그 결과, 독일과 후발 국가들은 정복할 땅과 팽창할 공간이 남지 않게 된 것이었다."


고노에는 제안된 국제연맹이 전승국들의 헤게모니를 굳히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일본과 같은 후발 국가들에게 경제적,정치적 기회의 상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가오는 평화회담은 경제적 제국주의의 이해와 단절해야 마땅하고, 그렇지 않다면, 국제연맹과 그것이 강요하는 군축은 일본을 영원한 약체로 만들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정책이 관철된다면, 작고, 자원이 빈곤하고, 자신의 모든 산업상품들을 소비할 수 없는 일본 같은 국가는 이에 의존할 수 없을 것이고, 바로 독일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현상유지를 파괴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열강에게 타국에 식민지들의 문호를 개방하라고 요구해야만 하고, 이는 모든 국가들이 식민지의 지역의 시장과 천연자원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일본이 인종차별의 철폐를 주장해야만 마땅한 것이다."


결국 사이온지가 현상유지에 만족했다면, 고노에는 그것이 기득권 열강의 이해에만 부합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패배한 독일처럼, 일본은 비기득권 국가라는 것이었다. 고노에가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했던 것은, 그것이 경제적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을 제도화시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933년,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 "그것은 무익할 뿐만아니라 비이성적이고, 전쟁을 끝장내기에는 불공평하다. 반면 분쟁의 진정한 원인과 세계의 불공정한 상태는 여전히 그대로다."   




덧글

  • 역성혁명 2011/08/31 16:12 # 답글

    결국 자신들이 서구 열강을 복사해서 열강의 문에 들어온건 성공했지만, 이미 그 안에는 내것 네것이 정해져있었고, 더 뻗어나가고 싶었던 일본에게는 베르사유 체제 그 전부를 부정하고 싶었을겁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전쟁을 전쟁으로 해결하자로 결정한 덕에 일본은 걷잡을수 없는 패망을 향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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