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오카,"삼국동맹의 불가피성이란?"1940년 9월 14일 유럽외교사

1940년 가을, 그해 여름에,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고, 영국도 곧 독일에 굴복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의 유럽열강의 힘의 공백이라는 상황을, 일본제국의 팽창을 위한 황금같은 기회라 간주했다.

그리고 이같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위한 황금기회를 살리기 위해서, 어떠한 외교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당시 일본에게 최선의 길인지 고민하게 된다. 일본 외무장관, 마쓰오카 요스케의 다음 발언은 바로 이같은 독일의 서유럽 정복이라는 유럽국제 정세의 대변화에 따른, 일본의 대응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고, 일본의 입장에서 유럽에서의 신질서가 확립된 만큼, 아시아에서도 신질서가 수립되야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 일본은 현재 갈림길에 있다. 일본은 향후 진로를 결정해야만 한다. 일본은 영국과 미국 편에 서야만 하는가 아니면 독일 과 이탈리아 편에 서야 하는가? 마쓰오카는 다음과 같은 대안들을 제시했다. 우선, 일본이 독일의 동맹제안을 거절하는 경우. 독일이 영국을 정복할지도 모른다. 독일은 심지어 유럽연방을 구축할 지도 모르고, 이를 통해 미국과 타협에 도달할 수도 있고, 일본이 연방내의 영국,네덜란드 그리고 다른 열강의 식민지에 대해 손끝도 대지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만약 일본이 독일 및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는다면, 미국과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고, 일본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영국 및 미국과의 동맹에 따르는 피해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일본은 중국문제를 미국의 요구대로 해결할 수 밖에 없고, 동아시아에서의 신질서라는 희망[대동아공영권]을 포기해야만 하고 그리고 다가올 반세기 동안 영미의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쓰오카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일본국민들이 이 같은 상황을 받아들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수만 명의 전사군인들이 이에 만족할 수 있을까?” 어쨌든, 영미와의 동맹 하에서는, 물질적인 어려움만을 단기적으로 모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 일본이 제1차세계대전에 따른 협상에 합의한 이후 직면해야만 했던 불리함들을 상기시키며, 일본이 이번에는 어떤 쓴 약을 삼켜야만 하는지 누가 알 수 있는가 반문했다. 그의 결론은 명확했다 : 미국과의 동맹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은 독일 및 이탈리아와 동맹을 체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던 것이다.

- 마쓰오카 요스케

일본 외무장관

1940년 9월 14일

대본영 정부연락회의 Imperial General Headquarters-Government Liaison Conference 에서의 발언 요지...


- 1940년 9월 27일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세 나라가 독일 베를린에서, 삼국동맹 조약을 체결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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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들꽃향기 2011/05/20 23:48 # 답글

    그리고 사이온지 공은 외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쪽에서는 미국, 서쪽에서는 영국과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제국의 급무이지, 독일과 이탈리아와의 동맹이 어떤 효과가 있더란 말인가!"

    ...하지만 대답없는 메아리...ㄷㄷ

  • 에드워디안 2011/05/20 23:51 #

    '도대체 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는가?!'

    임종 직전, 고노에를 원망하며 내뱉은 탄식...ㅠㅠ
  • 파리13구 2011/05/21 00:02 #

    들꽃향기님, 에드워드안님//

    사이온지 공의 절규도 이해할 만한 것이지만,

    프랑스,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의 몰락에 따른, 일본의 남방진출을 위해서는

    삼국동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영미와의 동맹 상황에서, 남방진출은 외교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20 23:51 # 답글

    대미관계 악화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중일전쟁은 일본제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사건이었습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20 23:52 #

    뭐, 우리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 2011/05/21 00:0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파리13구 2011/05/21 00:05 #

    ^^
  • 계란소년 2011/05/21 00:36 # 답글

    득실은 대충 비슷한데 중국이 관건이었군요. 중국은 포기하기엔 너무 크고 달콤했죠.
  • 파리13구 2011/05/21 00:48 #

    네, 한편으로는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편에 붙는 것이 유리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미국편에 붙은 것은 일본 제국의 장래에 불리하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일본이 동아시아 제국이 되기 위해서,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치명적이었다고 봅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21 00:52 #

    '미국의 주장에 그대로 복종한다면, 지나사변의 성과는 괴멸하고 만다. 만주국도 위태로워지고 더 나아가 조선 통치마저 불안정해진다. 지나사변으로 수십만 명의 전사자와 수배가 넘는 유가족, 그리고 수십만의 부상자, 수백만의 군대와 1억 국민들이 전장과 내지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심장이다. 양보, 양보하고 또 양보를 해서, 거기에 기본을 이루는 심장까지 양보해야 한단 말인가? 여기까지 양보했는데 이런 걸 두고 외교라고 할 수 있는가? 그건 외교가 아니라 항복이다.'

    -by 도조 히데키
  • 계란소년 2011/05/21 00:59 #

    근데 둘 다 자기가 붙는 쪽이 이긴다는 전제 하에 한 상상...orz
  • 파리13구 2011/05/21 01:08 #

    계란소년 님//

    당시 일미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양국이 중국문제에 대한 타협을 해야만 했는데,

    일본에게 타협은 중국문제에 대한 굴복이었고,

    중국문제에 대한 굴복은 일본 국내 정치에 큰 내분을 가져올 것이 자명했고,

    뿐만아니라, 일본의 대미 의존도가 더욱 높아지게 만들어,

    아시아에서의 일본 제국의 장래가 어두워진다는 계산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당시 미일관계에서, 핵심은 중국이었는데,

    네빌 체임벌린의 교훈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게 <유화>를 할 수 없었고,

    굴복은 제국의 미래에 대한 재앙이라 생각한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 에드워디안 2011/05/21 01:22 # 답글

    그래서 중국에서의 전면 철수를 요구한 헐 노트가 일본에겐 엄청난 충격일 수밖에 없었죠.

    '도조 내각에서도... 어떻게든 끝까지 對美개전을 피하려 노력했으나, 헐 노트가 충격이었다. 우리 문관들에게는 발언권이 없었기 때문에 군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대부분 각료들이 생각했다.

    걸출한 위인이라면 몰라도 일반인에게는 군부를 억제할 힘이 없었다. 개전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세라는 것이 있었고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by 기시 노부스케

    다소 무책임한 변명이라 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중국 문제에 제국의 사활이 걸렸다는 것이 당시 일본 수뇌부의 확고한 믿음이었던 셈입니다.
  • 파리13구 2011/05/21 01:39 #

    그렇습니다. ^^
  • 격동 2011/05/27 06:54 # 삭제 답글

    동기가 제국주의적이라 지금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역겹지만, 지금 한국의 외교부처가 저 정도 수준과 규모의 세계정략을 가지고 활동하는지 의문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부럽네요. 아니 솔직히 맨날 일본을 욕하면서도 열등감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될 지경입니다. 일본민족은 외교적 바보로 유명한 민족인데도 말입니다.

    예전에 한국의 인문학과 기초과학이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것은 투자규모, 일천한 역사 탓도 있지만, 제국주의 시대에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경영을 위해 요구되는 인문지리학적 지식과 자연과학지식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제국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당연히 제국주의 전쟁의 경험이 없으니 다양한 지역에서 전투를 하고 모든 전역에서 적국을 압도하기 위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 기초과학 연구를 해본 경험이 없는 것도 원인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국제정치를 수행하는 안목과 기술도 제국의 경험이 없어서 떨어지는 것 아닌지... 지난 4~50년 간 무역입국이 되면서 경제 문제와 관련한 국제정치에는 어느 정도 눈을 떴는데, 정치 문제와 관련한 안목은 여전히 광복 전후 수준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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