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과 영불외교..." 유럽외교사

1935년 10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했고,

1936년 5월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군사적으로 완전히 제압했고, 그해 7월, 국제연맹의 이탈리아 제재도 해제되었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은 국제연맹이 표방하는 집단안보정신에 대한 정면 도전행위였지만.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당시 양국의 대이탈리아 외교는 집단안보정신과 세력균형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국제연맹 회원국에 대한 침략에 대해 연맹차원에서 집단적으로 응징한다는 집단안보원칙도 있었지만,

영불외교는 이탈리아를 유럽에서, 독일에 맞서는 세력균형의 동반자로 보았던 것이다.

즉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에 대한 염려때문에, 에티오피아 사태에 대한 분노를 자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독일이 이미 히틀러 치하에서 다시 힘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 영국과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했고,
독일에 맞서는 연합에 이탈리아를 끌어들이는 것이 유용하다고 보았다.

가령, 1934년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려고 했을 때, 무솔리니는 군대를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파병했고, 이에 히틀러가 물러났다. 영국과 프랑스가 대독연합에 참가하도록 무솔리니를 설득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이었다.

영불의 현실주의 외교는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에티오피아 사태는 유럽의 안보에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즉 이탈리아를 독일에 맞서는 영불측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화해와 협상이 필요했고, 에티오피아의 안보 와 주권 보호는 부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영불이 이탈이아에 대한 유화를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1936년 히틀러가 로카르노 조약을 비난하면서, 독일군을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에 진군시켰고, 독일이라는 위협이 우려에서 현실로 변모한 순간, 영불은 즉시 에티오피아 라는 대의를 버렸다.

영불은 유럽에서의 세력균형을 위해, 이탈리아에 접근했고, 유럽의 세력균형을 위해, 아프리카에서의 집단안보 정신을 무시했던 것이다.

1936년 7월, 국제연맹의 대 이탈리아 제재가 해제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이었다.


당시, 국제연맹에 파견된 아이티 대표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크거나 작거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가깝거나 멀거나,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언젠가 우리가 누군가의 에티오피아가 될 수 있음을 절대로 잊지 말자."


이렇게, 영불은 세력균형이라는 자국의 이해를 위해, 국제연맹의 집단안보정신을 훼손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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