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7월,히틀러의 고민은?" 유럽외교사


<1940년 7월 6일, 베를린으로 금위환양한 히틀러>

1940년 7월 6일, 히틀러는 프랑스에 대한 극적인 승리 와 서부전선 작전의 놀라운 결말을 가지고, 수많은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베를린에 개선했다. 그것은 그의 가장 위대한 금위환양이었다. 수십만의 군중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제국의 수도의 거리는 꽃비가 내리고 있었고, 바야흐로 이번 전쟁의 끝이 가까워진 것으로 보였다.


이제 단지 대영제국만이 최종 승리의 걸림돌인 것으로 보였다. 환영하는 군중들 중 단지 소수만이 영국이 강력한 독일군에게 지속적인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프랑스의 완패라는 환호속에서도, 히틀러의 군사참모들과 심지어 독재자 본인도 영국의 저항이 재빠르게 극복될 것이라 확신하지 못했다. 뿐만아니라, 영국의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당시 독일 지도부의 잠정적인 공포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1917년에 그랬던 것처럼, 미국이 자신의 거대한 힘과 부를 동원, 전쟁에 개입하는 것!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독일의 완승 가능성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두개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 어떻게 영국을 전쟁의 대열에서 이탈시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미국의 전쟁개입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프랑스 항복 직후, 히틀러와 독일 전쟁지도부의 핵심적 고민이었다.


결국,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영국이 협상을 통해 타협하도록 설득시키거나, 아니면 무력을 통해 이를 강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영국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다면, 미국의 유럽전쟁 개입도 막을 수 있었고, 독일 서쪽 안전이 확보되면서, 히틀러는 1920년대 이래 그의 숙원이었던, 전쟁에 착수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 그것은 바로 "유대-볼셰비즘"을 파괴하기 위한 전쟁이자, 소련을 희생시켜서, 광활한 동부 제국을 구축하기 위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덧글

  • 萬古獨龍 2011/05/14 03:51 # 답글

    하지만 일본이 미국의 싸닥션을 맛깔나게 후려버렸죠...;;
  • 파리13구 2011/05/14 03:57 #

    그렇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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